[데스크칼럼]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카드 매각설

입력 2016-04-12 12:48 수정 2016-04-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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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금융시장부장

"제일기획 매각의 의미를 아시나요?"

며칠 전 만난 한 사모펀드 대표의 말이다. 한때 제일기획은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이었다. 이 광고회사 얘기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는 TV에 자주 등장했었다. 드라마에서 광고 프로듀서(AD)는 멋쟁이였다.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은 수재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멋쟁이들이 모인 제일기획은 유신 시절인 1973년 설립됐다. 1998년 거래소 시장에 상장됐고, 2002년 국내 광고회사로는 처음으로 취급액 1조를 돌파했다. 제일기획은 국내 광고회사 중 부동의 1위다. 그런데 삼성그룹은 그런 회사를 팔기로 했다.

"(제일기획을 판다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만 빼고 다 팔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수 있어 보인다. 삼성은 작년 방산과 화학 4개사를 한화그룹에 팔아 시장을 놀라게 했다. 최근 일부 화학 계열사를 롯데에 파는 등 삼성의 인수합병(M&A)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매각설은 이제 금융회사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왜 삼성카드를 팔려고 했는지, 제일기획을 보면 답이 나오는 겁니다"

삼성카드는 작년 후반기부터 매각설에 시달렸다.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인수하면서 매각설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 했지만, 최근 분할설이 나오는 등 다시 시끄럽다. 정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카드를 팔려고 했던 것일까.

어느날 투자은행 관계자들이 사모펀드 대표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들은 대표에게 삼성카드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놀란 대표가 삼성이 정말 카드회사를 팔려는 것이냐고 되묻자, 투자은행 관계자들은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정말 삼성카드를 팔려고 투자은행에 의뢰했던 것인지, 아니면 투자은행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였던 것인지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기업의 빅딜은 오너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접촉이 쉽지 않은 만큼 최종 확인은 대단히 어렵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오너가 갑자기 생각을 바꾼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삼성 금융계열사 중 삼성카드만 서초동 사옥으로 이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를 근거로 삼성카드 매각설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매각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삼성카드만 서초동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너와 전문경영인과의 관계에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매각설은 삼성증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금융회사를 판다면 삼성카드 혹은 삼성증권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삼성증권의 실적이 삼성카드만큼이나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매각설도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올해 초 삼성증권 매각설에 대해 "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매각설은 계속 나돌고 있으니 회사나 시장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다만, 이런 루머는 삼성 그룹의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금융시장에서 이런 루머가 돌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리학에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게 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미시적 세계에선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주며, 마찬가지로 관찰 대상도 관찰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이다. 시장에서 떠도는 얘기가 기업에 영향을 주고, 기업에서 나온 얘기가 또 시장에 영향을 주는 관계. M&A 시장에 정확히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원래는 루머였는데, 어쩌다 시간이 흘러 진실이 되는 시장이 바로 M&A 시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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