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넘은 지휘자가 유독 많다. 전문가들은 지휘자가 늙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한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동작은 운동량이 에어로빅과 맞먹는다. 지휘자는 제2의 작곡가라고 한다. 오케스트라 전체 화음을 다듬는 대여섯 시간의 리허설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예술성이 필요하다. 이런 두뇌활동이 노화를 방지한다고 한다. 더 중요한 요인은 즐기는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1927.9.25~2013.4.14)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가장 오래(12년간) 이끈 세계적 지휘자이다. 데뷔했을 때부터 죽기까지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살아온 모범적 영국인이다. 늙기 쉽지 않을 인물이다.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그는 피아노를 못 쳐 독학으로 지휘자의 길을 걸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행운이 찾아왔다. 급환이 생긴 거장 오토 클렘페러가 대리지휘를 부탁한 것. 그는 ‘돈 조반니’를 지휘해 ‘토머스 비첨 이래 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어 병상의 토머스 비첨 부탁으로 ‘마술피리’를 지휘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는 1967년 데뷔 이래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세계 무대를 누볐다. 1971년 게오르크 솔티의 후임으로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보스턴 교향악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들을 두루 거쳤다.
‘지휘봉을 든 신사’ ‘베를리오즈의 가장 친한 친구’ 등의 애칭을 가지고 있는 그는 조용하고 논리적이어서 간결하고 가식이 없는 지휘가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는 왕립음악원의 190년 역사에서 명예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1979년 영국 로열오페라단을 이끌고 내한했던 그는 눈을 즐겁게 하는 지휘자는 아니라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