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과 합병을 앞둔 KB투자증권이 중소기업 특화 금융투자회사(이하 중기특화 증권사)로 선정되면서 금융위의 ‘탁상행정’에 비판이 거세다. 1년 내외로 중기특화 자격을 상실하게 될 회사에 라이선스를 주면서 아깝게 탈락한 증권사들은 다시 사활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15일 금융위원회는 곧 ‘중소증권사’ 자격을 잃게 되는 KB투자증권을 중기특화 증권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합병 후 KB투자증권은 업계 3위의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탈바꿈하지만 규정대로만 심사를 진행한 것이다. 합병 후 KB투자증권은 자동으로 중기특화 증권사 라이선스를 잃는다.
금융위는 1년 이내 합병 시 이미 지정된 중기특화 금융투자회사를 제외한 곳 중 제일 높은 평가점수를 받은 KTB투자증권을 추가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1년 이후에 합병하면 기간 중 가장 최근의 평가 결과에 따라 추가로 지정할 증권사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업계에서는 KB투자증권을 선정 과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금융위는 현대증권과의 합병 절차가 최종적으로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고 해당 합병절차를 중기특화 선정 과정과 연관지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신 중소증권사들은 당장 생존 전략에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육성 정책에 힘을 실으며 영업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하자 자본확충, 후순위채 발행, 주가연계증권(ELS) 대량 발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신용보강 등으로 필사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자산규모를 자기자본의 일정 수준(11배)으로 제한하는 레버리지 규제가 도입되면서 지난해 메리츠종금증권 4100억원, 하이투자증권 1200억원, IBK투자증권 1000억원 등 유상증자가 줄을 이었다.
유상증자가 여의치 않은 증권사는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있다. 동부증권은 지난 3월 계열사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8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SK증권은 지난해 3차례에 걸쳐 총 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오는 21일에도 후순위채 500억원 발행에 나선다.
수익성 강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ELS 발행이나 부동산PF 신용보강에 나선 중소 증권사도 많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0년 23조원 수준이었던 ELS 발행잔액이 지난해 말 기준 100조원대로 늘어나는 동안 대형증권사의 발행규모는 3.5배 증가한 데 비해 중소형사는 4.5배 이상 늘었다.
PF 채권 유동화 과정에서 증권사가 개입해 신용공여나 유동성 공여 약정을 맺는 부동산PF 신용보강이 증가하면서 증권사 우발채무 규모는 2013년 11조원에서 지난해 24조원으로 확대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가 원칙대로 선정 절차를 진행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어차피 자격을 잃게 될 회사에도 라이선스를 부여한 것 같다”며 “그러나 생존 갈림길에서 악전고투 중인 중소 증권사들이 이러한 탁상행정으로 어떤 피해를 볼 것인지 고려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