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일본 지진 등 천재지변 대비 딜레마 커질까

입력 2016-04-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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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리스크 요인 간 상충 관계 정답 없어… 복원력 중요성 부각도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 지진으로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 또다시 비상이 걸리면서 국내 산업계도 천재지변을 대비한 딜레마가 커질 것으로 보여진다. 제품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면 리스크 대비 효과가 떨어지고 반대로 리스크 대비를 철저히 하면 설비 투자비가 늘어나는 등 비용 발생이 커서다.

◇산업 집중화 피해 키워 = 이번 지진으로 도요타 자동차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제조업체들이 지진 여파로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의 ‘다이아몬드형’ 서플라이체인 구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 구조의 서플라이체인은 완성품업체를 정점으로 1, 2차 부품업체로 내려갈수록 공급업체의 수가 많다. 하위의 특정 부품업체가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여타 업체에서 부품 조달이 가능하며 완성품업체는 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구조에서는 핵심부품 소재를 공급하는 업체가 가동을 중단하면 완성품 업체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는 이번 지진에 앞서 2011년 발생한 대지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 3월 1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같은 달 31일까지 일본 자동차산업은 완성차와 부품업체의 생산 중단으로 약 50만대 이상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특히 이러한 부품 공급망의 붕괴는 일본업체의 국내외 거점은 물론, GM, BMW, 르노, PSA 등 해외업체들의 생산 중단과 감산으로까지 확산됐다. 일례로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를 공급하는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조업 중단에 일본 내 자동차 공장도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 역시 2011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진 발생 지역에 완성차 생산거점은 없지만 차량 문과 엔진 등을 만들어 공급하는 아이신정기가 피해를 당해 완성차 생산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의 해외진출을 확대하는 등 생산거점을 분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린’ 생산방식, 글로벌 체인 혼란 가중 = 이번 지진으로 완성차 업체의 피해가 커진 것은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만 공급’해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린 생산방식’의 취약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만 개의 자동차 사양과 약 2만~3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차량을 대량 생산하는 자동차 산업의 부품 공급망에는 과잉의 부품이 재고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20세기 후반 자동차 산업은 최소한의 부품 재고로 고품질의 완성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린 생산 능력의 확보 여부에 좌우되었으며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 성장한 배경이 됐다.

최소한의 재고로 부품을 조달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의 린 생산방식은 완성차 업계는 물론 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그러나 린 생산방식은 부품 공급망의 재고를 최소화했기에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부품 회사의 생산이 중단되면 완성차업체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만 시장 대응력들이 중요한 경쟁우위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완성차를 비롯한 산업계가 린 생산방식 자체를 포기하기는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효율성 vs. 리스크… 관건은 복원력 = 과거 대지진과 이번 구마모토현의 지진으로 일본은 물론 국내 산업계도 생산 효율성과 재해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안전 재고를 증가시키면 지진과 같은 돌발적인 위기 상황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고자 부품과 제품 재고를 늘리면 재고 비용의 증가라는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부품 공급업체와 조달 지역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2000년 당시 뉴멕시코의 엘버커키에 번개가 내리쳐 필립스 전자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자 필립스로부터 부품을 조달받던 노키아는 필립스의 다른 공장뿐만 아니라 거래 중인 일본, 미국 부품업체들에 주문을 돌려 위기에 대응했다. 반면 싱글소싱 전략을 선택한 에릭슨은 필립스 공장이 화재로 문을 닫고 나서 다른 부품업체를 확보하느라 수개월 동안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다만 부품 공급업체의 다변화는 통합 구매에 따른 규모의 경제 상실과 품질 관리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과거 도요타의 리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관리해야 할 부품공급업체 수가 늘어나면 관리 비용이 증가하고, 지역별 기술 수준의 차이, 조직문화, 거래 관행 등으로 인한 품질 리스크 발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특정 지역 위기가 타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거점별 현지완결형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규모의 경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가령 A기업이 B기업을 통해 구매하던 부품을 현지구매하면 원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효율성과 리스크 요인 간 상충되는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복원력’의 중요성도 대두된다. 메이지 대학 토노 타카히로준 교수는 “100년에 한 번 있을 위기에 대응해 린 생산방식을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위기 이후 평상시 상태를 회복하는 복원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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