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이하 헤지펀드) 등록과 관련해 별도의 이해상충 방지 기준과 모범규준을 준비 중이지만 비명시적 규제에 불과해 실제 금융사고를 예방할 실효성을 갖췄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급한 규제완화의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탁상행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헤지펀드 겸업을 준비 중인 증권사 관계자들은 내내 ‘규제완화’ 기조를 보이던 금융당국의 방어적 태도에 고충이 크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그림자 규제를 철폐하고 올해 1월에는 금융규제 운영규정까지 만들며 업계의 자율성을 강조하던 당국이 증권사의 사모펀드 진입을 6개월째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이미 규제를 풀어놓은 상황에서 이해상충 방지 기준을 다시 수립하는 데 6개월 이상 시간을 쏟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며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최근까지도 업계에서 관련 위법사례가 끊이지 않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8일에는 현대, 교보, 대우, 미래에셋, 한화투자, NH투자 등 6개 대형 증권사들이 불법 자전거래를 한 혐의로 금감원에서 무더기 징계 심의를 받았다. 특히 현대증권은 59조원의 기관 자금을 불법 거래해 한 달간 ‘일부 업무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래는 투자자 간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어 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악용하면 특정 펀드나 신탁계좌로 수익 몰아주기 등 여러 위법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증권은 랩이나 신탁계좌에 담고 있던 기업어음(CP)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을 자사가 운용하는 다른 계좌에 매도하는 방식으로 수천차례 불법 거래한 혐의를 받았다. 약정한 랩이나 신탁의 계약이 만료되면 계좌에 있는 CP 등은 시장에 매각해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전거래를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증권사 내 기존 자금 운용부서와 새로 마련될 헤지펀드 부서 사이에서도 불법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증권사들이 헤지펀드의 수익을 내고자 신탁이나 일임운용 부서를 희생시키거나 기관 자금이 많은 신탁부서를 위해 헤지펀드가 수익을 뒷받침하며 ‘충성’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위법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일반 운용사보다 까다로워질 이해상충 방지 기준이 비명시적 규제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도 해당 규제의 법적 근거나 강제성은 미약해 금융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공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자문사 준법감시인은 “법에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요건이 명시돼 있을 때도 미공개정보 이용 등 위법행위는 꾸준히 발생했는데 당국 재량권이 최소화된 등록기준과 협회 모범규준을 가지고 실효성이 더 부족한 제재를 하려 든다면 실무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융당국 관계자는 “증권사의 헤지펀드 겸업 허용 여부는 넓은 의미의 인허가정책으로 심사하며 충분한 이해상충 방지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법을 근거로 이를 구체화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에서는 사모펀드 운용인력의 겸직제한, 부서 간 정보공유 금지 및 사무실 분리 등 이해상충 방지와 정보교류 차단과 관련된 구체적 의무가 모두 폐지된 상태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업계 자율로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는 선진국 사례를 검토하고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금융당국은 이해상충 방지와 정보교류 차단 원칙을 명시한 현행 자본시장법 제44조와 제45조, 같은 법 시행령 제50조 등 규정이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 현황을 살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들을 근거로 사후 제재는 가능할지라도 헤지펀드 등록 단계에서부터 금융위가 구체적 요건을 지정한다면 이번 규제완화 기조에 역행하는 과도한 재량권 행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증권사의 사모펀드 겸업 등록을 광의의 ‘인허가’ 사안이라며 정부의 재량권을 확대해 해석했지만 개정 자본시장법상 해당 사안은 재량권이 최소화된 ‘등록’ 제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칙 규정 범위를 넘어서 ‘새로운 부담’을 야기하는 수준의 이해상충 방지 요건을 마련하라는 기준이 나온다면 증권사가 굳이 지켜야 할 의무도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