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경제] ‘바람직한’ ‘좋은’ 지배구조가 기업을 망칠 수도 있다

입력 2016-04-21 10:20 수정 2016-04-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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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
▲최승재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
일본에는 잘 정리된 인공조림 숲이 많다고 한다. 교토에 있는 이조성(二條城)과 금각사(金閣寺)의 숲도 보기에 아름다운 인공조림을 했다. 그런데 일본의 숲은 사람의 손으로 조림을 하지 못한 우리의 숲보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한다. 자연에서 갖은 나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을 인간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여러 가지 기업지배구조를 실험해 왔다. 그 실험들은 늘 ‘바람직한’,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제도화되었다. IMF금융위기가 오자 기업지배구조가 전근대적이어서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긴급수술을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위시한 외국에서 유래한 제도들이 다양하게 도입됐다.

바야흐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우수하다고 하는 기업지배구조 제도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더 강한 약을, 더 많은 용량의 약을 처방해왔다. 그 결정판의 하나가 2015년 입법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법명에서 벌써 지배구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 법은 지난 20년간 이어진 지배구조논의를 결집한 법이다.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쓰는 일과 법조문을 쓰는 일은 유사한 면이 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업그레이드하면 보통은 디버깅(debugging)이 돼 문제점이 개선된다. 그런데, 지배구조를 사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좋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보기에 아름다운 숲을 가꾸는 것이 사실은 숲을 망치는 것처럼 누군가가 보기에 바람직하고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기업을 망치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숲의 천이(遷移)가 그 숲의 시간이 지나면서, 기후가 바뀌면서,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법은 기업이 자신의 몸에 가장 맞는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를 찾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제도가 기업의 성장이나 발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기업가의 의식, 주변 환경, 주력 산업 등 기업이라는 숲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

법의 역할을 먼저 가지치기를 하다가 나무를 분재로 만드는 것으로 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유방암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유방을 사전에 적출하는 것과 같은 외과수술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눈에 보기에 아름다운 성형수술을 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논의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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