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혁신 보고서? 혁신이 그만큼 어렵고 잘 안 된다는 방증일 것이다. NYT 내부에서도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눈사태에 대한 기사를 사진과 지도, 동영상 등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만든 ‘스노폴(Snowfall)’ 같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 가상현실(VR) 기사의 시연 등에서 단연 앞서가면서도 엄살이다.
15~1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온라인 저널리즘 국제심포지엄(ISOJ)에서도 혁신과 변화가 화두였다. 기조 연설자로 나선 NYT 혁신 및 전략부문 에디터 킨지 윌슨은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모바일”이라고 했다. 비주얼 저널리즘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 비중이 훨씬 많은(text heavy) NYT 콘텐츠의 절반을 수년 안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 것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빠른 판단과 실행, 실패와 성공, 평가. NYT는 성큼성큼 가긴 간다.
우리가 혁신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혁신은 태스크포스(TF) 같은 ‘특공대’만 하는 것, 혹은 이들이 주도할 것이란 착각. 아니다. 혁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 결정권자의 의지와 일관된 지원이다. 그래서 특공대를 뒀더라도 이들을 가미가제(神風)로 만들 게 아니라 조직 전체와 융화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장은 슈피겔 혁신 보고서를 소개하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이런 의견을 밝혔다. “혁신은 정치투쟁이다. 디지털 혁신 주도 세력이 사내 권력을 갖지 못한 조직에서 디지털 혁신은 불가능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 기획취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가 ‘특종 교본’이 아니라 어찌나 반갑던지. 나에게 이 영화는 보스턴 글로브가 정체성을 찾는 혁신과 변화의 과정을 보여줬고, 핵심 키는 리더 그룹이 쥐고 있다는 걸 각인시켜 줬다.
보스턴 글로브는 전통적으로 국제 뉴스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보스턴의 ‘ㅂ’자도 모르는 편집국장 마티 배런(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이 부임하고 지역지로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보스턴 교구 신부들의 성추행 의혹 취재 지시가 그것. 배런과 팀장은 기자들이 특종 기사를 하나라도 빨리 내자며 동동거릴 때에도 “한 사람의 신부가 아니라 시스템을 보도해야 한다”며 반대한다. 그렇게 1년간 600여 개 기사가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졌고 불쾌한 진실은 만천하에 밝혀졌다. 보스턴의 대표지로 거듭났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는 다시 짚어봐야겠지만.
진부함을 참고 한국적 상황에 대비해 보자. 가능할까? 속보도 하고 분석도 하고 기획 시리즈물도 해야 하는 한국의 기자들이? 거의 닮은 기사를 납품해대는 한국 미디어에는 차별화 시도 자체가 혁신일 텐데 의사 결정권자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일부에게 혁신을 실험시킨다. 그런 혁신은 절대 조직 전체에 전파되지 못하고 조직 문화도 바꾸지 못한다. ‘혁신 알러지’만 일으키다 끝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