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호모 사피엔스로 살아남는 법 '멍때리기'

입력 2016-04-25 11:21 수정 2016-05-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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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모바일팀장

“걔가 말이야, 학교 다닐 땐 멍 때리기만 했던 애였는데 말이야.” 지인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흔히 나오는 대사다. “그랬는데 걔가 지금은 잘 나가는 OO”라는 식의 멘트와 흔히 세트로 엮이곤 한다. 내 경험으로 봐도 그렇다. 중학교 때 교실 맨 뒤에 앉아 하염없이 창밖만 보던 L은 이탈리아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고교동창인 K는 수업 시간에 팔짱을 끼고 앞자리 친구의 머리카락만 주야장천 쳐다보더니 40대 초반에 이미 대형 음식점 3곳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걔들’이 성공 DNA를 얼마나 타고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멍 때리던’(문법상으로는 ‘멍하던’이 바른말이다) 이들이 종종 성공한 걸 보면 확실히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과학자들은 ‘멍 때리기’를 통해 뇌가 정보를 정리하고 기억력을 높이며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사실 뇌는 쉬는 게 아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느라 더 활발하다.

‘멍때리기 대회’가 다음 달 7일 열린다. 벌써 3년째다. 1회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2회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더니 올해 개최 장소는 수원 화성이다. 오늘로 참가 접수가 마감되는데, 선발 인원 70명에 현재 신청자만 490여 명. 7:1이 넘는 경쟁률이다.

수십 명이 광장에 모여 하나같이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광경.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대회의 취지는 사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매몰돼 과부화된 뇌를 돌아보자는 거다. 완전 공감이다. 디지털 기술과 기기가 점령한 요즘 세상을 생각해보라. 디지털 세상은 계속 이리 들어오라고 다그쳐댄다. 메일이나 뉴스알림에서부터 카카오톡, 페이스북 게시물, 쇼핑앱의 할인 정보까지 끊임없는 정보의 폭탄이다. 진짜 나한테 필요한 정보인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메시지 알림이 뜨는 순간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디지털 문화는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야금야금 뺏어간다. 지치는 줄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을 수 없어 그렇게 스몸비(스마트폰+좀비)가 되어간다.

일부러라도 잠깐씩 머리를 쉬게 하지 않으면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살게 될 판이다. ‘생각을 안 하는 시대(unthinking age)’라는 걱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러니 마음먹고 ‘생각줄 놓아버리기’란 디지털 세상에서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이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가 아니라 ‘잠시 꺼두셔야 합니다’다. 디지털 세상에서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그리고 ‘가끔 스마트폰에서 완전히 손 떼기’가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행동으로 옮겨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직업상 스마트폰을 분신 삼아야 하는 나로서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완전히 떼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실천하고 있는 ‘디지털 다이어트’ 방법이 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만큼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지하철 안 사람들을 쳐다보며 관찰놀이 하는 재미도 되살아나고, 열차 밖으로 잠깐씩 스쳐 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운치도 돌려받은 느낌이다. 열차 안 사람들을 보노라면 저마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저렇게들 열심인 걸까, 나도 저랬을 텐데, 싶다.

새롭게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생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코딩 교육과 같은 소프트웨어 과목이 의무화된다. 디지털 세상이니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쓰고 읽고 이해하는 능력) 교육이 당연하다. 컴퓨터 언어는 다음 세대의 읽고 쓰기 위한 도구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디지털 리터러시는 기기에 지배 당하지 않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끔은 디지털 세계에서 이탈하고, 침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우선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광고문구로도 쓰이며 유행했던 문구다.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이 문구가 인기를 끈 건 디지털에 매몰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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