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ㆍ조선산업에 대한 정부발(發) 기업구조조정이 부처 간 오락가락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시장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 최근 정치권마저 구조조정 이슈에 개입하면서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채권단(금융기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등 본질적 ‘액션플랜(실행계획)’의 속도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관련업계 및 관계부처에 따르면 유일호 부총리가 특정 기업을 지목하며 부실기업 구조조정 긴급성을 피력한 이후 한계 상황에 이른 해운ㆍ조선업종과 관련한 정부발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합병, 회생, 기업 간 빅딜설’까지 확인되지 않은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부 부처 간의 인식조차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오락가락 구조조정 정책이 ‘컨트롤타워 부재론’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앞서 시장에서는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중 생존 가능성이 높은 곳에 지원을 집중하고, 다른 한 곳은 법정관리로 정리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그러나 현대증권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이 같은 기류가 바뀌고 있다. 매각 대금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현대상선이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인하 협상에서도 다소 앞선다는 평가를 받자, 한진해운과 대등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양사 모두 출자전환을 통해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시킨 뒤, 산은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회사채) 만기 연장 등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밖에 양사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후 어느 정도 자금 확보가 이뤄졌을 경우 합병하는 대안도 떠오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합병안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업종 불황이 수년 째 지속된 데다 시장의 환경 변화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정부당국이 말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이들 회사를 상대로 매입한 채권 3조원도 이 같은 시나리오에 울고 웃고를 거듭하고 있다.
조선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방향의 핵심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 체제의 존속 가능성 여부다.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시장에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을 합병한 뒤 현대중공업과 ‘빅2’ 체제로 운영하는 시나리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삼성그룹 사업 재편의 성격을 비춰볼 때 중공업 사업부문에 힘을 집중한다는 전망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조선사별로 흩어져 있는 방위사업부문을 통폐합하는 빅딜설도 거론되고 있다. 이 또한 확정되지 않은 시나리오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이 지난 수년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시장의 주장을 외면하다가, 이제 와서 채권은행 중심의 시장 자율에서 정부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정책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산업 대(大)개조에 대한 큰 그림이 나와 공론화를 바탕으로 액션플랜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