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 도전하는 여성③] 김보용 스토레츠 대표

입력 2016-04-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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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는 나의 천직…동대문표 패션을 ‘글로벌 SPA’로

▲김보용 스토레츠 대표가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진행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패션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또, 유행에 따라 빠르게 제작돼 즉시 유통되는 패스트패션을 추구하면서 자라와 H&M 같은 세계적인 SPA 브랜드로 키워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신태현 기자 holjjak@)
▲김보용 스토레츠 대표가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진행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패션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또, 유행에 따라 빠르게 제작돼 즉시 유통되는 패스트패션을 추구하면서 자라와 H&M 같은 세계적인 SPA 브랜드로 키워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신태현 기자 holjjak@)

꿈을 향한 도전은 가슴 뛰는 일이다. 그리고 고민의 연속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꿈을 찾고 도전을 결정하는 순간에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치열한 삶을 살 준비가 돼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재차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전’에는 꿈을 향한 설렘과 열정만큼이나 용기와 결단력, 모험심 등이 필요하다.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32세가 되던 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스타트업을 세우기로 도전한 여성이 있다. 여성패션 쇼핑몰 스토레츠(Storets) 김보용 대표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스토레츠 사무실은 입구부터 분주함이 느껴진다. 높게 쌓인 박스와 옷으로 뒤덮인 행거가 놓여있고 15평 남짓 되는 좁은 사무실에서는 검품 작업이 한창이다. 김보용 대표는 패션 쇼핑몰 대표답게 패션 센스가 빛나는 모습이었다. 네이비 컬러의 티셔츠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롱스커트에 스터드 장식이 가미된 블랙슈즈. 차분하고 세련된 감각이 돋보였다.

스토레츠는 ‘동대문표 의류’와 자체제작 상품을 해외에 내다파는 쇼핑몰로 지난 2011년 문을 열었다. 최신 유행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를 거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을 표방하면서 영국 최대 온라인 패션 쇼핑몰 아소스(ASOS)를 모델로 삼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패션 유통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현재 미국 패션 매거진 나일론(NYLON)과 패션정보 사이트 후왓웨어(WhoWhatWear) 등에서 “미래에 자라(ZARA), 포에버21, H&M과 경쟁할 브랜드”라고 소개될 만큼 글로벌 SPA브랜드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제이미 정(jamie chung), 니콜리치(nicole richie), 올리비아 홀트(olivia holt) 등 해외 유명 셀럽들이 스토레츠 제품을 착용하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와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베이슨캐피탈로부터 10억원을 투자받아 도약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자라나 H&M에서 옷을 사 보면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모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국내에 좋은 상품들이 많아도 브랜드로 만들지 못하고 널리 소개해 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직접 동대문 제품을 브랜딩해서 외국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거든요. 외국의 명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바이어보다 한국 패션 아이템을 외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거죠.”

김보용 대표는 자신이 소싱(sourcing) 능력에 있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남들보다 상품을 싼 값에 사와서 판매하는 것 말이다. 이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고, 그의 꿈은 ‘바이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한 도전은 시작됐다.

패션업과의 인연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장점을 일찌감치 파악한 김 대표는 옥션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팔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아 옥션 파워셀러로 등극했고 2년 동안 활동했다.

“마냥 즐거웠어요. 이게 내 일이구나 싶더라고요. 바이어로 커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면서 판사를 꿈꾸던 김 대표는 약 1년 반동안 준비해온 사법고시 시험도 과감히 포기할 만큼 바이어라는 꿈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학길에 올라 영국 유명 디자인 스쿨인 런던칼리지오브패션에서 패션 매니지먼트를 공부했다. 낯선 땅에서도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현지 회사의 문을 두드렸고 영국 명품 백화점인 하비스니콜 본사 바이어팀에서 7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다.

“한국인 최초였죠. 점포에서 판매를 하는 일을 해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본사에서 직접 바이어로 일한 사람은 없었거든요. 옥션에서의 파워셀러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이 면접 시험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어요. 또 한국 동대문에서 구입해 간 옷을 입고 일했는데 ‘끌로에’나 ‘마르니’ 등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는 바이어들이 제가 입고 있는 옷에 큰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 옷들이 해외 어디에 내놔도 디자인이나 품질이 절대 떨어지지 않거든요. 그때 알았죠. 동대문 제품이 외국인들의 수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만족시킬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요.”

▲스토레츠
▲스토레츠

김 대표는 당초 2년 간의 짧은 유학시절을 보낸 뒤 현지에서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유학생,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없지 않았다. 그런 탓에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원하던 자리를 양보해야했다. 그로 인한 상실감과 회의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불평등과 차별은 결국 20대 젊은 한국인 여성의 꿈과 열정을 꺾어버렸고 귀국을 결정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못다 이룬 꿈을 향해 다시 도전에 나섰고 2011년 스토레츠를 창업하게 된다.

“카드빚을 내서 달랑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했어요. 사무실도 없었죠. 집 안에다 컴퓨터를 놓고 일을 해 나갔죠. 대학시절 옥션 셀러로 활동할 때와는 또 달랐어요. 그 때는 쉬웠거든요. 진입 장벽도 낮았고 셀러도 많지 않았고 소싱도 쉬웠으니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죠.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어요. 나만의 단독 사이트를 내고 한국에서 외국으로 판매하려하니 모든 것이 막막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에서 가게를 하다가 사람이 없는 허허벌판에 홍보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꼴이 된 거죠.”

김 대표는 ‘예쁘고 좋은’ 상품이면 소비자가 알아서 척척 사갈 줄 알았단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의 구매 행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제서야 마케팅에 전력을 쏟았다.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해외 패션 커뮤니티를 찾아 판매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면서 반응을 살폈다.

“첫 번째 고객은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6만원짜리 하이힐을 팔았어요. 창업 3개월 만에 첫 매출이었죠. 너무 좋아서 동대문표 선물도 보내줬어요. 고객이 물건 보고 좋아하고 피드백해 줄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큰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죠.”

김 대표는 한류 같은 붐에 편승할 생각이 없다. 오로지 상품으로 승부를 건다. 스토레츠의 물건을 사가는 외국인은 해당 제품이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모른다. 한류를 타고 K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김 대표는 그 덕을 보길 원하지 않았다. “한국 옷이에요. 사보세요”가 아니라 “너희(외국인 고객)가 좋아할 만한 옷이 있어. 이거 한번 사 봐. 어때? 한국 것이었는데 놀랍지?”라는 반응을 기대했고 그렇게 고객과 신뢰를 쌓아가길 원했고 지금 또한 그렇다.

김 대표는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전 심리가 발동하고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단다. 단순 노동보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규칙성의 업무’에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쩔쩔 매기보다는 이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생겼다.

시스템 오류로 사이트가 다운돼 중국 시장 매출이 반토막났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소비자를 절반가량 잃었고 아직 다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버티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고 있어 조바심은 크지 않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크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시작했고 그 동안‘아, 안 되나’생각하고 포기할까도 했지만 지금은 ‘그래, 할 수 있어’라고 분발하고 있는 시기에요.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명료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끝까지 가보려고요. 사람들이 패션을 소비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거든요. 아직 자라나 H&M 처럼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누구나 알고 소비하는 브랜드로 자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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