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지 말거라. 화려한 건축물에 마음을 쏟지도 말고, 전쟁을 좋아하지도 말아라.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군주가 돼야 한다.” 왕실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재정 파탄을 염려했던 것일까. 루이 14세는 증손자인 미래의 루이 15세에게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루이 15세는 과감한 재정 개혁을 해야 함에도 정치적 압력에 번번이 굴복한다. 외교 무대에서도 애매한 판단으로 전쟁에 휘말린다. 재정은 고갈되고 민심은 그의 곁을 떠난다. 부르봉 왕조의 운명이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루이 15세(1710.2.15~1774.5.10)는 다섯 살에 즉위했다. 때문에 먼 친척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가 섭정했다. 오를레앙 공은 바닥난 곳간을 채우려고 1716년 재정 개혁을 시도하지만 고등법원과 재정가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루이 15세는 친정을 하게 되고 스승인 플뢰리 추기경을 재상으로 앉힌다. 플뢰리는 불필요한 전쟁을 막고 왕실 재정도 어느 정도 회복시킨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 어두운 루이 15세의 무모함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 휩쓸리게 되고, 뒤이어 7년 전쟁에도 참여한다. 유럽 평화의 중재자라는 애매한 명예만 얻었을 뿐 아무런 실익도 챙기지 못한 채 말이다. 프랑스는 다시 막대한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다.
플뢰리가 죽자 1745년 나약한 루이 15세는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게 국정을 맡긴다. 그녀는 성직자와 귀족 등에 대한 과세를 추진했으나 본질을 떠나 세력 다툼으로 양상이 변질된다. 루이 15세에게 다양한 정치적 압력이 가해지지만 그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인다.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프랑스 구체제의 모순은 더욱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