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진위가 입장을 바꾼 이유는 지금의 비대위 인적 구성은 안 된다는 친박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비대위 인적 구성을 바꾸기 위해서 혁신 비대위를 새롭게 구성하자는 제안이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정 원내대표의 고민이 발생한다. 친박들의 주장대로 비대위 대신에 혁신 비대위를 새롭게 구성하려면 비박 강경파들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친박들에게 무릎 꿇은 원내대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반대로 비박계의 주장대로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고 비대위 인적 구성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친박계의 추인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 원내대표는 최경환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의 회동을 주선했고, 그 자리에서 비대위원장 인선을 떠넘긴 것 같다. 중진회의의 결론은 “정진석 원내대표 당신 맘대로”라고는 하지만, 자신 의지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기에, 정 원내대표는 이런 회동을 통해 비대위원장 인선을 양 계파의 수장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정 원내대표가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친박과 청와대가 정 원내대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친박과 청와대는 이미 정 원내대표를 파문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만일 이런 생각이 맞다면 정 원내대표가 지금 설령 친박들의 의견대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친박과 청와대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미래만 불투명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만일 친박들의 의견을 들어줄 거라면 처음부터 들어줬어야지 이제 와서 친박들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독립된 정치인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빽도’하면 결국 패배자의 이미지만 남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정 원내대표는 중진회의나 양 계파 수장들의 회동을 주선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애초에 결단한 대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어제 회동에서도 비대위 이후 구성될 새 지도부의 권력구조 문제와 비대위원장 인선 방식에 대해서만 합의했을 뿐, 비대위원장이 새롭게 비대위원을 어떻게 임명할지 등은 그대로 남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박들의 반발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라도 본인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 남고 싶다면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그리고 당장은 피해를 볼 수 있어도 밀어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지금의 고난이 결국 미래에는 정치적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