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에 말 걸다] 식민지의 두 시인에게 시대는 너무 무거웠다

입력 2016-06-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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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영화를 읽는 법

남녀가 연애를 시작할 때 눈빛을 교환하다가 결국 두 사람을 맺어 주는 건 한 사람의 말 걸기부터이다. 모든 관계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 처음 인사를 나누면서 깊어진다.

영화가 역사에 말을 붙여본 지는 오래됐다.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는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역사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 시간에도 역사라는 탄광에서 작가들은 금을 캐고 있다. 작가는 원석을 골라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렇듯 영화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역사에 말 걸기를 시도할 것이다. 어떤 때는 화답을 해줄 것이고 맘이 내키지 않으면 냉소를 머금을 것이다. 이 글은 영화를 통해 역사에 말을 걸어 볼 것이고 영화 속에 담긴 역사의 진실과 의미를 찾아보는 여정이 될 것이다.

동북아 3국의 ‘역사전쟁’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이름으로 한국고대사에 정밀한 전략으로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고, 일본은 해묵은 독도 영토 문제에서 최근의 교과서 파동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 논란까지 쉼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냄비처럼 끓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향후 언제든 우리 이웃 국가들은 ‘역사전쟁’을 시도 때도 없이 일으킬 것이고, 우리는 그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 필수도 좋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기업 입사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도 고무적이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뚜렷한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어떤 외부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에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 역사의식은 그래서 중요하다. 역사의식은 먼저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한다. 다행히 우리는 주위의 많은 사극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알아 나간다.

한국사를 소재로 하는 사극영화의 흥행률은 매우 높다. 한국영화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한 영화는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명량’이며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1000만 영화 12편 중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무려 9편이나 된다(변호인, 국제시장 포함). 올해 개봉작인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밀정’ ‘고산자, 대동여지도’ ‘김선달’ 등이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영화를 소재로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는데, 청중의 반응에는 공통점이 있다. 강의를 듣고 어느 정도 영화 이면의 역사적 팩트를 이해하고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이 영화를 보긴 본 걸까요? 다시 봐야겠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가 사극영화를 텍스트 삼아 역사를 공부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팩트(사료)와 픽션의 차이를 찾아내고 왜 다르게 표현했는지까지 알아야 온전한 내 지식이 된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의 세 번째 왕인 태종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장희빈만큼이나 영화, 드라마의 단골 인물로 출연(?) 중인 정안군 이방원은 시대나 작가, 혹은 연출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려 충신 정몽주를 죽이고 이복동생과 동복형까지 해하며 왕위에 오른 폭군 이미지로 그려지는가 하면,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정도전과의 권력 쟁투를 통해 비범한 군주로 성장해 조선 초기 나라의 기틀을 정립한 인물로 자리매김되기도 한다. 표독스러운 장희빈은 역사에서 대세였던 시대가 있었고, 김태희가 열연한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순정(純情) 무구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한다.

영화 ‘명량’에서 실제로는 조선의 판옥선과 일본 전함 간의 백병전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거나 영화 ‘사도’에서 비극적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유 역시 다양한 추론 중에서 이준익 감독의 해석일 뿐이라는 게 그것이다. 그래서 사극영화엔 가이드가 필요하고 역사의 팩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사극영화나 드라마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경제신문답게 영화상식 하나 배우고 가자. 1000만 영화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과연 1000만 영화는 제작자가 얼마나 돈을 버는 것일까? 영화 관람료를 1만 원이라고 가정할 때, 영화발전기금과 부가세가 공제되고, 공제된 금액 중 50%를 극장이 가져간다. 여기서 배급수수료를 빼면 약 3500원이 된다. 관람료 1만 원 중 투자 및 제작사의 최종 수익금은 한 명당 3500원이 되는데, 영화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된 제작비가 최우선적으로 회수된다.

즉 영화 한 편 만드는 데 100억 원이 들었을 때 3500x1000만 명 하면 흥행수익은 총 350억 원이 되고 여기서 제작비 100억 원을 회수하면 250억 원이 남게 된다. 이 금액을 투자사와 제작사가 일반적으로 6대 4로 나눈다. 내가 영화를 제작해 1000만 영화 흥행을 거뒀다면 250억 원의 40%, 즉 100억 원을 순이익으로 벌게 된다. 물론 최고의 결과일 뿐이다.

‘동주’,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영화

각설하고, 우리가 첫 번째 탐구할 영화는 ‘동주’이다. 사극영화 전문 감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준익 감독표 영화다. 이 감독은 ‘황산벌’로 시작해 최근 ‘사도’까지 쉼 없이 역사영화를 제작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동주는 시인 윤동주를 말하는데, 시인의 삶은 영화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시인의 삶을 영상 언어인 영화로 보여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무릇 시란 박제된 활자에 시인의 감성과 독자의 상상력이 덧붙어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시각 매체인 영화가 시인의 삶과 시를 영화로 표현해내기란 잘 해야 본전이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천민자본주의가 고도로 전일화한 대한민국에, 그것도 가장 상업적인 문화장르인 영화에 느닷없이 식민지 치하의 한 불행했던 시인 윤동주를 꺼내 들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배짱이다.

전작인 ‘왕의 남자’나 ‘사도’와는 달리 이번에는 저예산 영화로 만들고자 작심하고 쓸데없는 겉치레를 모두 없애고 시인의 눈과 마음만을 남기고 영화를 직조해냈다. 또 하나 특이점은 흑백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시인의 캐릭터를 담아내기엔 흑백영화가 가장 적합한 촬영방식이었는지 모른다. 흑백 촬영은 컬러 촬영보다 훨씬 더 어렵다. 조명의 밝기가 비슷하면 피사체의 구별이 흐려지기 쉽고 빛의 강약 조절에 바짝 신경 써야 하며 공간 배치, 인물 블로킹 등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또한 카메라의 지나친 움직임을 자제하고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효과를 낸다. 이 감독의 흑백영화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이 감독은 상업적으로도 영리한 사람이다. 영화 마케팅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기에 영화 제작비에 대한 동물적 감각도 흑백영화를 주장한 이유 중 하나다. 감독은 “상업영화로 가려면 족히 100억 원은 드는 영화다. 경성, 용정, 교토 등을 세트로 한다는 건 예산 감당이 안 된다. 이 영화는 철저히 동주와 사촌인 몽규와의 심리 관계로 가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하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윤동주 역에 처음에는 유아인을 염두에 두었고 유아인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여러 이유로 신인인 강하늘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이 역시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 또 한 명의 신인 스타 발굴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질 무렵인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용정에서부터 함께 자란 사촌 몽규는 문우이자 내심 문학적 라이벌로 영화에 등장한다. 식민지하의 평범한 두 시인에게 시대는 너무나 무거운 짐과 고난을 안겨준다. 그들이 짊어진 일제강점기는 어떤 시대였고 왜 우리는 일본에 지배받아야 했는가? 그리고 동주가 지금 우리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화 ‘동주’를 통해 우리 역사의 가장 암울한 시대의 터널을 지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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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사학과, 동국대대학원 영화과 졸. 중앙일보 문화사업 전문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위원, 청운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주)크로스컬처 대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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