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시지를 쓰는 사람이다. 그것도 당의 메시지를 쓰는 새누리당 직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문제는, 모두 내 문제가 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것은, 유명인에게 변고가 생긴 일은, 집안의 대소사나 지인의 부고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막 몸에 비누칠을 했더라도,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 중이었대도 지금 당장, 자판을 두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적당한’ 수위와 ‘적절한’ 표현이어야 한다. ‘깊은 유감’의 정도와 ‘겸허한 자세’, ‘존중한다’는 범위와 뉘앙스는 여전히 미묘하고 어렵기만하다.
4월 13일 이후 말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진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너희를 증오한다는 분노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TV와 신문, 인터넷 등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비웃음에 눈물을 쏟던 그날마저 주변의 공기는 무척이나 매섭고 서늘했다.
그래도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어떤 이에게는 4년짜리 명패일 뿐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웃고 말아도 좋을 안주거리지만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부양해야 할 식구들의 밥줄이자 일터이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가 집안싸움으로 흙탕물을 튕길 때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직원들처럼, 한둘 손님을 위해 눈보라를 뚫고 기어이 문을 열고야 마는 구멍가게 주인처럼.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말을 고른다.
나는 새누리당 직원입니다. 당신도 말을 고를 것이다. 무슨 말이든 나는 또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들려오는 첫 마디가 따뜻한 질책이길, 보이는 그 빛이 격려의 눈빛이길 간절히 소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