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통신] 지치지 않는 ‘슈퍼히어로’ 창조자 스탠 리

입력 2016-06-10 13:35 수정 2016-06-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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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빅 히트를 하고 있는 마블코믹스의 주인공들인 X-멘과 스파이더-맨,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 등을 창조한 스탠 리(Stan Lee·93)를 최근 할리우드에 있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90대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하고 활기에 넘쳤다.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을 옆에서 반복해줄 통역사를 대동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크고 내용도 정확했다.

유머가 풍부한 리는 시종일관 농담과 위트 속에 연기하듯 손으로 큰 제스처를 써가며 신나게 인터뷰를 즐겼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리는 “남한이지”라며 웃었다.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 카메오(잠깐 얼굴을 비추는 것)로 나오기를 즐기는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우연한 일입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첫 ‘X-멘’ 영화를 찍을 때 해변의 핫도그 장수 역할을 맡겼어요. 그 후 ‘스파이더-맨’ 감독이 ‘X-멘’에서의 카메오가 좋던데 더 해보라고 했고, 그 다음부턴 카메오가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X-멘과 같은 슈퍼히어로들은 언제 만들었나요?

“난 책 읽기를 좋아해 책 속의 주인공들이 다 슈퍼히어로였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셜록 홈즈입니다. 슈퍼히어로들을 만든 것은 슈퍼맨 때문입니다. DC코믹스에서 슈퍼맨을 창조, 히트하자 내 출판사 사장이 ‘당신도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보라’고 해 X-멘, 스파이더-맨, 헐크 등을 만들었지요.”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요?

“벽을 기어가는 파리를 보다가 파리처럼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슈퍼히어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섹트 맨’ ‘플라이 맨’ ‘모스키토 맨’ 등 잡다한 이름을 생각하다가 스파이더-맨이 좋겠다고 결론지었지요.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다르게 하려고 주인공을 개인적 문제가 많은 틴에이저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출판사 사장에게 말했더니 ‘내가 들은 아이디어 중 최악’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출판사의 만화 중 폐간하는 ‘어메이징 판타지’ 마지막 호에 스파이더-맨을 슬쩍 그려 넣었는데 이게 빅 히트를 하게 된 거지요.”

△당신을 ‘만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요?

“만화 잘 그리고 쓰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겸연쩍은 소리입니다. 난 운이 좋아 때를 잘 만났습니다. 내가 만화를 시작했을 때 다른 만화가들은 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만화를 그려 별로 글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을 위한 만화를 만들기로 했고, 남을 위해서보다 내가 읽고 싶은 얘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좌우간 나는 나를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스탠 리. 올해 93세다.
▲스탠 리. 올해 93세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도 당신의 팬이라고 들었는데요.

“사무실이 뉴욕에 있을 때 그가 만나러 왔지요. 검은 레인코트를 어깨에 걸친 멋쟁이였습니다. 영화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DC코믹스와는 늘 라이벌 관계였나요?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한데 라이벌이 되겠어요? 하하. 농담. 우린 서로 잘 알고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우리 이름은 원래 애틀라스 코믹스였습니다. 만화가 잘 팔리면서 이름을 고치기로 하고 생각해낸 게 마블이었지요. 그런데 당초 이름이 내셔널이었던 저들도 우리를 따라 DC코믹스로 개명하더군요.”

△할리우드가 당신 만화를 영화로 만들 거라고 짐작했나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린 그저 만화가 잘 팔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블록버스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영화가 당신의 만화를 가장 잘 살렸다고 보는지요.

“전부 다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이언 맨’이 내 뜻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 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지요. ‘스파이더-맨’과 ‘X-멘’도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인물이 590명에 가까워 다 기억을 못 하겠습니다.”

△슈퍼히어로의 인기가 얼마나 계속될까요?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린 어렸을 때 다 동화를 보면서 자랐지요. 나이를 먹으면서 동화를 더 이상 읽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결코 싫증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슈퍼히어로들의 얘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당신 만화가 원작인 TV시리즈를 봅니까?

“귀가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 TV를 안 보지만 그에 대한 얘기는 읽고 있습니다. 몇 작품에 카메오로 나오기도 했어요. 내가 나오는 시리즈의 인기가 좋더군요.”

△당신의 작품은 현 시대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나요?

“난 세상일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라디오를 경청합니다. 그리고 내 작품에 가급적 시의를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실에 충실하자는 거지요.”

△당신 만화에는 과학적 용어나 공상과학적인 면도 많은데 과학 지식이 깊은가요?

“과학적으로 들리게 하려는 거지요. 감마 레이나 코스믹 레이 같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난 그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만화의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대성공은 영화계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내밀한 드라마를 만들기가 힘들어졌다는 소리도 있던데요.

“슈퍼히어로들의 자리는 늘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얘기에 결코 물리지 않거든요. 보통 사람들의 보통 얘기도 설 자리가 있다고 봅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너무 많은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다른 드라마와 균형을 맞추게 되리라고 봅니다.”

△작품 속의 그 풍부한 유머는 어디서 온 건가요?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난 슈퍼히어로 얘기를 쓰는 만큼이나 우스운 얘기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코미디언 친구들도 많지요.”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와 나빴던 때는?

“가장 좋았던 때는 내 회사 사장이 나쁜 아이디어라고 한 ‘스파이더-맨’이 잘 팔린 일이고, 가장 나빴던 때는 오래전에 우리 영웅들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경우입니다. 그 멍청이 책임자가 한다는 소리가 ‘사람들이 영화를 안 좋아하면 만화도 안 팔린다’는 것이었어요.”

△부인 조운 클레이턴(1947년에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타이프라이터에 매달려 글을 쓰는데 아내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아내는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특히 집안 장식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아내는 내가 개밥을 살 돈과 집안 장식을 할 수 있는 돈을 버는 한 개의치 않습니다. 참 멋있는 여자지요.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영화 ‘X-멘:아포칼립스’
▲영화 ‘X-멘:아포칼립스’

할리우드의 여름장사, 올해는 죽쒔다?

할리우드의 여름은 통상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휴가 시작되는 5월 마지막 주말부터 노동절 연휴인 9월 첫 주말까지 석 달간이다. 할리우드가 한 해 총수입의 40%를 벌어들이는 이 기간에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방학과 휴가를 맞은 젊은이들을 위한 액션 위주의 ‘팝콘영화’들이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면서 요즘엔 5월 첫 주말부터 이런 영화가 개봉된다. 빅 히트 중인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가 그 예다.

그런데 올 할리우드의 여름장을 연 2편의 대형 영화는 죽을 쑤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 나흘간 1위를 한 것은 한국에서도 개봉 첫 주말 1위였던 ‘X-멘:아포칼립스’로, 총수입은 8000만 달러. 제작비 1억7800만 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2014년 같은 기간에 시리즈 ‘X-멘:데이 오브 퓨처 패스트’는 1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2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년)의 속편 ‘거울 속의 앨리스’로, 총수입이 불과 3420만 달러다. 전편과 같이 조니 뎁이 나왔는데 이런 정도면 ‘망했다’고 할 만하다.

박흥진 영화평론가ㆍ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한국일보 외신부, 사회부 근무. 한국일보 LA미주본사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와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 블로그: hjpark1230.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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