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⑯] 정치학박사·관료출신… 1980년대 사분오열 증권업계 하나로

입력 2016-06-14 11:00 수정 2016-06-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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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길 전 증권업협회장

김선길 전 증권업협회장(1985~1988년)이 현직에 있었던 198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 증시 역사에서 눈부신 발전의 시기로 기록돼 있다. 언뜻 생각하면 증권업협회장으로서 ‘좋은 시기’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은 시기였다. 급속히 성장하는 증시는 ‘쏠림’이 심했다.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어서 종합주가지수의 변동성도 어느 때보다 컸다. 특수를 누리려는 증권사들의 불완전판매가 성행하는 가운데 큰 손실을 보는 투자자가 속출하는 등 혼탁한 시장 상황이 이어졌다. 이제 막 개방의 첫발을 떼려던 증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김 전 회장은 바로 이 시기 증권협회장으로서 누구보다 적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학 박사였던 그는 시장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에 능했던 동시에 자신의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력과 인맥을 쌓아 왔다. 김 전 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공헌이 아니었다면 급격한 성장의 대가로 크나큰 성장통을 치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서 정치학 박사, 관료출신 증권업협회장 = 김 전 회장은 전임자인 권중동 회장의 정치권 진출로 증권업협회장에 선출됐다. 직전 직책은 중소기업은행장이었다. 선임 당시의 자세한 분위기를 전하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증권업협회장이 되기 전까지 증권업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업계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돌’인 셈이었다.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들 수 있지만 김 회장은 달랐다. 그는 일생 자신이 뿌리를 갖지 않은 곳에 뛰어드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늘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이들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궤적을 그려내 왔다. 시작은 미국 유학이었다. 김 전 회장은 서울대 문리대 3학년 시절 홀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갑자기 택한 유학이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도 대학원에서 만났다.

미국 대학에서 조교수, 부교수를 각각 거치며 자리를 잡아가던 김 전 회장은 또다시 돌연 12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잠시 강단에 섰지만 관료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고등고시를 통과한 정통관료가 아니었지만 승진은 빨랐다. 과학기술처 연구조정관으로 시작해 상공부 통상진흥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실장, 차관보 등 요직을 거쳐 차관까지 승진했다. 차관보 시절 아파트 투기로 불명예스러운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차관으로 발탁된 것은 그의 능력이 그만큼 공직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전 회장은 그의 경력에서 나타나듯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김 전 회장과 관련한 기록에는 ‘관료티가 배어 있지 않은 사람’, ‘서글한 눈매’, ‘웃음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묘한 재주’ 등의 인물평이 나온다. 주변에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있다.

◇‘사분오열’ 증권업계 하나로… 정부와도 과감한 여론전 = 김 전 회장이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했던 1985년은 국내 증권사 간 경쟁이 격화된 시기였다. 증권업협회 회원사끼리도 엇갈린 이해관계로 크고 작은 대립이 있었다. 김 전 회장은 취임 직후 증권업계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뒀다. 직전에 기업은행장이었던 그는 은행의 증권업 진출을 막는 방안을 사장단 회의의 의제로 올려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취임한 지 4개월 뒤인 1985년 9월 신문기사에는 다음 문구가 등장한다. ‘증권업계, 과거에 볼 수 없던 협조무드로 단결력 과시’.

업계의 단결을 이끌어낸 김 전 회장은 정부당국에 대한 정책 건의에 역량을 집중했다. 당시 활황이었던 증시는 과열을 우려한 정부가 규제 방안을 꺼내들자 4개월 만에 반토막이 나는 등 변동성이 심했다. 김 전 회장은 정부의 ‘냉·온탕 처방’으로 증시의 자율적인 조정기능이 회복되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증권사 상품보유한도, 신용융자규제, 위탁증거금비율규제 등 규제를 원점으로 되돌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했다. 이후 1987년 정부가 발표한 증시안정 대책을 살펴보면 당시 김 전 회장이 건의했던 내용이 대부분 반영돼 있다.

증권업계 노력도 스스로 독려했다. 당시 실적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던 증권사 상당수는 부실한 기업의 값싼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관행적으로 팔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은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이 미흡하면 당국의 강력한 규제조치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사장단을 설득했다. 공감한 증권사들은 6개 대형사 임원으로 증시안정대책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정치학 박사 감투가 무색하지 않은 김 전 회장의 갈등조정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은 한동안 중단돼 있던 증권회사 임원 대상 증권연수 교육 과정을 부활하는 등 증권 전문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증권연수 교육도 대폭 강화했다. 나아가 상장회사 증권담당자(교육과정 개설시점 기준 338개사)를 위한 증권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증권업협회의 역할을 확대했다.

김 전 회장은 1988년까지 증권업협회장을 역임하다가 정치권에 진출, 1995년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제3대 해양수산부 장관(1998년 3~1999년 3월)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자연인으로서 지내다가 2008년 향년 76세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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