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달라진 나라

입력 2016-06-22 10:55 수정 2016-06-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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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러시아대사ㆍ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러시아의 지금을 이야기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켜갈 수는 없다. 그만큼 러시아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얽혀 있다.

이 점은 지난주에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편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튄 데에서도 드러났다. 반 총장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서 할 연설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발끈한 것이다. 배포된 원고에 “러시아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분쟁을 종식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대량 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우크라이나의 주 유엔대사는 “이러한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분쟁을 격화시킨 당사자인 러시아를 칭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난하였다.

전후맥락을 소개하려면 2014년 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우크라이나에서는 나라의 진로를 친러로 할지, 친EU로 할지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었다.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 친EU 노선을 버리는 선택을 하자, 수도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서 시위가 격화되었다. 시위는 혁명이 되었고, 대통령은 도피하였다. 반러 혁명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자 크림반도와 동부 우크라이나 등 친러 지역이 반발하였다. 크림반도의 친러 세력은 러시아와 합병을 추진하였다. 러시아는 합병을 받아들였다. 이어 동부 지역의 반군은 분리를 위한 무장 봉기를 하였다. 서방은 크림반도 합병과 동부 지역 반군 활동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고 러시아에 강한 제재를 부과하였다.

이로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로부터 러시아와 서방과의 관계와 러시아 국내 상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러시아에 대해 말한다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할 정도다.

원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나라로서 러시아의 기원은 우크라이나에 세워진 키예프 공국이었다. 기독교와 키릴 문자를 받아들여 러시아의 근간을 세운 것도 키예프 공국이었다. 나중에 세력의 중심이 모스크바 공국으로 옮겨져 모스크바 시대가 열렸고, 그 후에 피터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하였다가, 볼셰비키가 수도를 모스크바로 다시 옮길 때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중심이 된 때도 있었으나, 출발점은 키예프였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 역사는 세 도시 이야기라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거의 같은 언어와 종교를 공유하고 인종적으로도 동 슬라브인으로서 가깝던 두 나라가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넌 것이다.

러시아와 서방 간의 관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급전직하하였다. 서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무력에 의한 영토 침탈로서 국제법 위반이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동부 지역 반군을 러시아가 사실상 지원하는 데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와의 고위급 인사 교류를 억제하고 있고 러시아가 주관하는 주요 행사를 보이콧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가 주최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하여 러시아를 평가하는 듯한 연설을 하려 하자 우크라이나가 반발한 것이다. 이처럼 제재가 부과되니, 냉전 종식 이후 터덜거리며라도 이어져 오던 러시아와 서방 간의 협조는 이제 아득한 옛일처럼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탈냉전 시기에 서방과 러시아 관계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러면 일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서방 측은 단기적으로 최근에 벌어진 사태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일탈 행위가 원인이라고 본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21세기에 19세기식 영토 합병을 하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상황을 냉전 종식 이후 오랜 기간 서방이 러시아의 이해를 침해해온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여기고, 그 맥락에서 자신의 행동은 당연하고 방어적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탈냉전기 초반에 러시아가 서방과의 적극적인 협조를 하였으나, 서방은 지속적으로 서구 세력권의 동진을 추구하면서 러시아의 이익을 잠식해왔다고 본다. 나토와 EU가 동진을 거듭하였고, 급기야는 옛소련의 일부였던 지역에까지 서방의 손길이 뻗쳤는데 우크라이나가 그 사례라고 인식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가 서방의 반러시아 기지가 되는 상황은 좌시할 수 없다고 여긴다.

러시아인에게 크림은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확보한 땅이다. 톨스토이도 이 전쟁에 참여하였고, 그 경험으로 소설도 썼다. 크림은 소련 시대 러시아의 일부였는데, 우크라이나 출신인 흐루쇼프가 1954년에 우크라이나의 행정 관할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자 크림이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 크림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 모항인 세바스토폴이 있어서 러시아는 그간 우크라이나와 협의하여 세바스토폴 항을 장기 임차해왔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는 무역, 금융, 첨단기술, 투자에 애로를 겪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국제유가가 반토막이 나는 바람에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루블화 가치가 절반가량 떨어졌고 인플레도 심각하다. 경제는 2015년에 3.7%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이 정부에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외부 세계와의 대결 국면이 오면 내부적으로 단합하는 러시아인 특유의 기질이 있고, 냉전 종식 이래 서방이 러시아를 홀대해왔다는 국민적 반감이 있다. 이러한 반감은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탈냉전기 초반에 누적되어 오다가 러시아가 고유가에 힘입어 국력을 회복한 탈냉전기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표출되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최고조에 달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국민 정서를 관리하면서 서방과의 대립 관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러시아가 냉전 시기 소련의 국력으로도 견뎌내지 못한 서방과의 대립을 장기간 지속하여 유리한 결과를 끌어낼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경제난이 3년째 지속되는데 민심이 계속 지지를 보일지도 불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러시아가 국면전환을 원하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전향적인 움직임은 러시아에서 나오는 게 좋을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먼저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데 있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피해의식과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이라는 자의식과 열위에 있다는 현실이 복합적인 심리로 작동하고 있어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타협 의사를 내비칠 때에도 공격적인 행태를 가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서방이 이런 러시아식 행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외교관으로 오래 미국과 러시아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상호 과도한 편견과 오해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의 편견은 러시아가 거칠고 자주 국제 규범을 어기며 쉽게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편견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많은 계략을 꾸미며 대외정책은 군사력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다. 서로는 상대가 먼저 공격적이고 음모적인 접근을 하였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대응이 과도하게 되고 이것이 또 과도한 반응을 유발한다. 냉전 시기에 이런 일이 수없이 생겼다. 상대의 의도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장기간 두 강대국이 소모적인 대결을 하였다. 냉전은 불필요한 대결과 자원의 낭비라는 전 인류적 폐해를 초래하였다. 한반도에 끼친 폐해도 분단, 6·25전쟁, 남북대결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냉전 이후에도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소홀하였고 러시아는 서방에 대한 과잉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갔다. 양측 모두 탈냉전 시기에도 냉전적 관념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였다. 이제 다시금 재현되는 러시아와 서방 간의 대립을 보면서 냉전 시기만큼은 아니라도 이에 준하는 소모적 대립이 지속될 것을 우려한다. 또 한반도에 튈 파편에 대해서도 염려한다.

그러므로 대립을 완화할 단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올가을 러시아 총선에서 드러날 민심에 따라 러시아가 운신의 여지를 가질지, 또 내년 미국 신행정부 출범이 변화의 전기가 될지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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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외교학과 졸. 제13회 외무고시 합격. 외무부 동구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주미대사관 공사, 중앙대 겸임교수,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 러시아대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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