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괴롭고 애들도 괴로운 '맞춤형 보육'

입력 2016-06-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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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3일 오전10시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맞춤형 보육에 대한 학부모ㆍ교사의 곡성’ 집담회를 열었다.

이날 집담회는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맞벌이 가정 학부모와 외벌이 가정 학부모, 보육교사 2인이 경험을 통한 생생한 보육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맞벌이 가정으로 민간어린이집을 다니는 만 2세의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 A씨는 어린이집 내 외벌이 가정이 많아 오후 4시가 되면 아이들이 하원을 하는데, 맞벌이 부모 자녀가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있었고 혼자 남겨진 아이는 우는 행동을 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해했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70대 중반인 외조부모가 4시 이후에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더 이상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 없어 내년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더 오랜 시간 머물도록 할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A씨는 “우리나라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 아이들의 하원은 제3자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며 “사람들이 둘째를 낳으면 대체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는 푸념을 하는데 이는 푸념이 아닌 처절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맞춤형 보육제도에 대해 A씨는 “맞춤형 보육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현재 받고 있는 지원마저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예고하는 것”이라며 “한 어린이집에서 맞벌이, 외벌이 가정을 일정비율로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기본적으로 공통의 서비스가 보장되지 않고 보육시간만을 이원화시키면 보육시간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공립어린이집과 같은 공공보육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보육시간이 축소되면 공공보육의 축소를 불러올 것이고,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친화적 보육서비스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보육은 아이들을 지키고(保) 돌보는(育) 일이며, 동시에 같은 의미로 가정과 사회를 돌보는 일이기도 한데 국가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담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날 만 4세와 만 1세 아이를 두고 있고, 제3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부부가 육아와 살림을 조율하면서 하고 있는 학부모 B씨는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풀타임 직업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 번역이나 자료조사 등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맞춤형 보육제도에 의하면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종일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B씨는 “전업주부의 경우 9시부터 3시까지 이용시간을 제한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린이집 프로그램이 10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9시 이후에 맡기는 경우가 많으며 3시는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는 시간으로 아이를 급히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증명해 줄 수 있는 서류가 없어 자기기술서를 작성했는데, 적다보니 마음이 참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나의 일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후 자기기술서를 내고 주민센터에서 급여가 들어온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통장 사본 6개월치를 보내라고 요청이 왔는데 B씨는 “고작 3시간 정도 더 맡기자고 생활비 통장을 보여주고 읍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펐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B씨는 아울러 “정부가 맞춤형 보육제도 실시 목적이 0~2세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 형성이라고 했는데, 현재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애착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최경숙 보육교사는 교사대 아동 비율이 너무 높은 현실에서 초과보육까지 허용되는 열악한 상황과 CCTV 설치 이후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참담한 심정,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이들과의 스킨십도 꺼려하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또 0세 아이들의 경우 3명까지 돌볼 수 있는데, 가정어린이집에서 원장반 아이까지 6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자 너무나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김호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은 “우리나라 보육정책의 목적은 행복한 영유아에 집중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무상보육을 내실화 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보육이 아니라 안정적인 재정구조가 기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의장은 맞춤형 보육제도는 취업맘과 비취업맘의 갈등을 조장하고 부모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보고해 보육대상자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를 맡은 김진석 교수는 “애초 어린이집 12시간 운영의 원칙을 세운 데에는 맞벌이 가정 부모 뿐만 아니라 취업준비, 학업, 가족 기능의 상실, 비정규적 생업 종사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부모들이 있고, 애초에 가족의 보육책임을 공공이 나눠지겠다는 취지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맞벌이 부모와 그 아이들에 대한 현장의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전업 부모에 대한 역차별을 제도화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가정양육시간의 확대가 필수적이라면 모성휴가와 부성휴가의 확대, 유급육아휴직급여의 현실화, 보편적 아동수당의 도입을 통해 부모가 가정양육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ㆍ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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