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천연물약 발암물질 논란 '꺼지지 않은 불씨'

입력 2016-06-24 07:23 수정 2016-06-2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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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80여곳, 벤조피렌 저감화 성공..업계 "식약처, 책임 떠넘기기" 불만

'천연물의약품에 발암물질이 검출된다'는 논란이 불거진지 3년 만에 사태가 잠잠해질 조짐이다. 제약업체들이 정부가 지정한 기준 규격대로 발암물질을 줄이며 생산 중단의 위험에서 가까스로 벗어났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발암물질 저감화를 강제하며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떠넘긴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제약사 80여곳이 ‘애엽추출물’ 성분 위염치료제에 대해 ‘벤조피렌’ 검출량을 줄인 제품의 출하 준비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가 벤조피렌 저감화 대상으로 지시한 동아에스티의 천연물신약 ‘스티렌’을 비롯해 같은 성분으로 만든 복제약(제네릭) 제품들 모두 벤조피렌 검출량을 종전보다 줄이는데 성공했다.

▲동아에스티의 위염약 '스티렌'
▲동아에스티의 위염약 '스티렌'
대다수 제약사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기준 규격을 충족하는 원료의약품을 확보, 완제의약품을 만들었고 이 내용을 반영해 허가 변경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식약처가 제약사 89곳의 99개 품목을 대상으로 올해 6월부터 ‘애엽추출물’ 함유제제의 벤조피렌 검출량을 일정 수준으로 줄인 제품만 출하를 허용하겠다고 공표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제약사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벤조피렌을 줄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원료의약품 업체로부터 벤조피렌을 줄인 원료를 확보했다. 제약사들은 중국 원료의약품 업체 3~4곳에서 애엽추출물을 공급받는데, 원료 업체들이 쑥으로 애엽추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농축할 때 온도를 낮추고, 활성탄을 활용해 서서히 유효 성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벤조피렌을 줄였다.

이로써 제약사들은 무더기 천연물의약품 생산 중단의 위험은 피하게 됐다. 하지만 ”애초에 식약처가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해놓고도 과도한 기준 규격을 강제했다"며 불만이다.

천연물의약품의 벤조피렌 유해성 논란은 지난 2013년 대한한의사협회가 일부 천연물신약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며 판매금지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벤조피렌은 발암물질의 일종으로 주로 300~600℃ 온도에서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될 때 생성된다. 주로 식물을 원료로 만드는 천연물의약품은 원료의 가열과 건조 과정에서 벤조피렌 발생 위험에 노출된다.

당초 식약처는 벤조피렌과 같이 제조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물질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해외에서도 판매 중인 천연물의약품의 벤조피렌 검출 여부는 규제하지 않는다. 식약처는 그동안 벤조피렌이 유해물질이라는 이유로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제약업체들이 자율적으로 벤조피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권장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감사원이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실태 감사 결과를 통해 "국민 건강에 위해가 없도록 조속히 벤조피렌 저감화 등 적정한 조치를 하고 벤조피렌의 잔류허용기준 설정을 검토하는 등 관리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자 식약처는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식약처는 벤조피렌 노출안전역(MOE)이라는 계산식을 적용해 매일 해당 의약품을 평생 복용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위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음’(1일 최대 복용량 기준 벤조피렌 노출안전역 10⁶ 이상 확보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낮추라고 지시했다.

▲식약처가 제약업체들에 제시한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적정 검출량 기준
▲식약처가 제약업체들에 제시한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적정 검출량 기준

그러나 식약처가 지난해 말 스티렌 제네릭 제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위해평가 결과 조사 제품 40여개 모두 벤조피렌 검출량이 식약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의 기준을 적용하면 제약사들은 해당 제품들의 생산을 중단해야 하고, 그동안 국민들이 복용했던 스티렌 제네릭들은 모두 품질부적합이 되는 셈이 된다.

스티렌 제네릭 제품들의 벤조피렌 검출량이 식약처의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식약처의 위해평가 지침서에 따르면 모두 ‘위해 가능성이 낮음’으로 평가됐다. 식약처가 제시한 기준보다 한 단계 떨어지지만 매일 평생 복용해도 위해 가능성이 낮은 수준이다. 제약사들이 "식약처가 지나치게 과도한 기준을 강제한다"고 반발해 온 이유다.

그럼에도 식약처가 '기준 규격 초과한 천연물의약품 출하금지’ 방침을 굽히지 않자 제약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벤조피렌을 줄이는 방법을 수소문했고, 결국 원료의약품 업체로부터 규격에 맞는 원료를 공급받는 방안을 찾아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원료의약품의 제조 시간이 길어지면서 원료 가격이 20~30% 가량 높아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제약사의 부담 가중은 이 뿐만이 아니다. 식약처는 벤조피렌 저감화를 신고한 제품들을 대상을 수거 검사를 실시해 변경된 허가 내용과 다를 경우 행정처분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또 제약사들에 정기적으로 벤조피렌 저감화 관리 실태를 식약처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식약처가 처음에는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함량이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도 논란이 지속되자 결국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떠 넘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벤조피렌을 줄일 수 있으면 줄여보자는 취지로 저감화를 추진했다”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티렌에 대해 저감화를 지시했고, 다른 천연물 의약품의 벤조피렌 저감화 여부는 추후 검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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