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과 전자소송

입력 2016-07-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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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사회경제부 기자

"증거기록의 양이 방대해 열람·등사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아직 기록을 검토하지 못해서 기본적인 입장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형사 재판을 취재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준비기일은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지 계획을 세우는 절차다. 그러나 대부분의 준비기일은 피고인 측에서 언제까지 증거기록을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구속기간(6개월) 만료를 고려해야 하는 재판부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는지 기본 입장도 모르는 상태에서 증인신문 일정이나 증거조사 절차를 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으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공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세 차례의 준비기일이 진행됐지만, 신 전 대표 측은 20만 페이지에 이르는 기록을 이제야 검토하기 시작했고 공동피고인은 아직까지 복사도 마치지 못했다.

증거기록 열람·등사 과정은 피고인 측에서 검찰 기록을 넘겨받아 일일이 복사한 뒤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비실명화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렇게 복사된 서류가 문제 없는지 검찰에 다시 확인을 받은 뒤 변호인들의 기록 검토가 시작된다.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처럼 증거기록이 많으면 고속 복사기까지 동원해도 복사하는 데만 한 달여가 걸린다. 재판 지연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사나 행정사건에서는 2011년부터 전자소송이 시행돼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하지만 형사사건은 성범죄처럼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건들이 있어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 음주·무면허 운전 등 피해자가 없는 일부 약식사건만 전자소송으로 진행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2차 피해 우려 때문에 형사사건에서 전자소송을 적극적으로 못한다면 예외를 두면 어떨까.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처럼 피해자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경우라면 전자소송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대법원과 대한변협은 최근 '재판제도 개선협의회'를 발족했다. 오는 12월까지 정기적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한 주제에는 '전자소송 확대' 방안도 포함돼있다. 수사 및 재판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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