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③] 일제는 왜 단군을 말살하려 하였는가

입력 2016-07-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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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체성 지우고 열등의식 심으려 혈안

김동환([사]국학연구소연구원)

단군조선이나 부여의 역사를 말함에 단군을 외면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고구려 역시 그 기반 위에서 대륙을 호령했던 집단이다. 또 민족의 위기 때마다 단결과 극복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이 단군이다. 단군 구국론이란 바로 이러한 의식을 통해 민족의 위난을 극복코자 했던 우리의 정서와 연결된다. 한마디로 단군은 우리 역사의 정체성이자 민족 구난의 상징적 존재였다.

단군과는 거리가 멀었던 불가(佛家)의 일연이 쓴 ‘삼국유사’나 유가(儒家)의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실린 고조선과 단군사화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주적 역사 의식의 발로였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했다. 고려 공민왕이 요동정벌의 명분을 단군조선에서 찾은 것이나, 조선 왕조의 조선이란 국호 역시 이러한 정신의 계승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선조의 단군에 대한 적극적 이해가 개국 시기부터 나타난다는 점도 주목된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자기 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주체의식의 표상으로서 단군 인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 정신을 무시한 중화 성리학자들에 의해 단군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자 숭배만이 전부로 알았던 그들은, 단군조선이야말로 이풍(夷風)을 벗지 못한 저열한 문화 단계로 보았고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지 못한 비합법적인 국가로 매도했다.

단군의식의 고조는 일제의 침략과 함께 최고조를 맞는다. 1909년 대종교의 등장이 그것이다. 민족 정체성의 근대적 완성이 단군 문화의 중심이었던 대종교로부터 마련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국시(國是)로서의 홍익인간이나, 국전(國典)으로서의 개천절, 그리고 국기(國紀)로서의 단군기원 등이 모두 이 집단을 매개로 정착된 것이다. 또한 민족 문화의 핵을 이루는 국교(國敎)·국어(國語)·국사(國史) 부문의 인식 제고 역시 대종교와 떨어질 수 없다. 민족 정체성이 곧 단군이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힌샘 주시경, 백연 김두봉, 고루 이극로, 외솔 최현배, 위당 정인보,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무원 김교헌의 모습이다. 이들은 대종교의 단군정신을 토대로 언어민족주의와 역사민족주의를 개척하며, 일제강점기 문화투쟁의 선봉에 섰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힌샘 주시경, 백연 김두봉, 고루 이극로, 외솔 최현배, 위당 정인보,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무원 김교헌의 모습이다. 이들은 대종교의 단군정신을 토대로 언어민족주의와 역사민족주의를 개척하며, 일제강점기 문화투쟁의 선봉에 섰다.

한편 일제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정체성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 핵심이 일본의 신도(神道)와 일본어, 일본사를 우리의 국교·국어·국사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도 국교화(國敎化)를 통해 우리의 전래 단군 신앙을 압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하여 우리의 국어를 조선어로 타자화시켰으며 우리의 국사 역시 조선사로 몰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일본 신도의 종주(宗主)를 내세우며 끝까지 저항한 집단이 대종교다. 또한 한글 투쟁과 국사 항쟁을 주도한 집단도 대종교였다.

주시경 한글운동의 배경에는 대종교적 정서를 토대로 한 언어 민족주의적 가치가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 김두봉, 최현배, 이윤재, 신명균 등도 단군 민족주의를 토대로 한 한글 투쟁에 앞장선 인물들이다. 이들은 후일 대종교의 국내 비밀결사였던 조선어학회를 결성하여 이극로와 더불어 한글 투쟁에 헌신했다. 일제는 조선 식민지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만행을 자행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그것이다.

단군을 정점으로 한 역사 방면의 긴장도 팽팽했다. 단군이 바로 우리의 고대사였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의 조선사를 몰아내고 그들의 일본사를 새로운 국사로 내세우며 조선사의 열등의식을 고양시킴에 혈안이 되었다. 대종교 계열의 김교헌,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등은 이른바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을 통해 이에 적극 맞섰다. 특히 중국 상해에서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통사’가 국내로 유입되면서 일제의 조선사 왜곡은 보다 조직화하여 시도되었다. 조선사편수회를 통하여 조선사 편찬 작업이 그것이다. 즉 주인(일본사)과 노예(조선사)의 구별을 분명하게 만드는 개조작업이었다. ‘일제에 노예가 되는 조선사’, ‘일제에 굴복하는 조선사’, ‘일제에 순종하는 조선사’를 만드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한국사 왜곡을 주도한 내용이 담긴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일제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한국사 왜곡을 주도한 내용이 담긴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자율성이 아닌 타율성론을 부각하고 발전성이 아닌 정체성론을 강조하며 단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닌 복속된 열등 민족으로서의 시혜 의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이다. 그러므로 일제는 1910~1911년에 걸쳐 이미 우리의 고대사 관련 고서를 수거하여 소각시켰으며, 이러한 작업은 1937년까지 계속되었다. 일제의 우리 고사서 인멸 역시 단군을 기둥으로 하는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고 말살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가 단군을 말살하려 했던 의도는 분명하다. 단군이 곧 우리의 정체성으로 우리의 고대사인 동시에 말, 글, 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한편 일제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정체성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 핵심이 일본의 신도(神道)와 일본어, 일본사를 우리의 국교·국어·국사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도 국교화(國敎化)를 통해 우리의 전래 단군 신앙을 압살하고 일본어를 국어로 하여 우리의 국어를 조선어로 타자화시켰으며 우리의 국사 역시 조선사로 몰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일본 신도의 종주(宗主)를 내세우며 끝까지 저항한 집단이 대종교다. 한글 투쟁과 국사 항쟁을 주도한 집단도 대종교였다.

일제에 의해 붕괴된 단군의 위상은 해방 후에도 그대로 지속되었다.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남북의 이념적 분단은, 남북한 내의 그러한 정서의 연착륙을 불가능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 친일적 요소를 채 청산하지 못한 국내의 정치·종교·학술·문화적 기득권 속에서, 해외 항일운동의 정신적 동력을 제공한 단군의 정서가 자리 잡기에는 민족 문화적 토양이 너무 척박했다. 개천절은 형식적 국경일로 외면되어 갔고 홍익인간의 가치 역시 교육적 장식 구호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일제 관학에 의해 왜곡·날조된 일제 식민사관이 해방 이후 우리 학계에 그대로 답습되면서, 고대사의 복원은 요원해지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한 정체성 확립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 물질 중심의 성장 가치와 서구의 배타적 가치관에 밀려, 우리 고유 문화의 잔영이라 할 수 있는 마을공동제와 사당(祠堂), 그리고 수많은 민속유산 등은 반근대적 유산 혹은 미신이라는 허울을 쓰고 무너져갔다. 그 속에서 단군은, 역사의식을 망각한 위정자들이나 식자층의 외면과 더불어, 민족 문화를 앞세운 군사정권의 들러리로 포장되어 부정적 이미지만을 더욱 각인시켰을 뿐이다. 특히 단군은 설화 속에 파묻혀 동물원의 곰으로 희화되거나, 단군문화는 전통문화에 대한 형식적 구호 혹은 정책에 의해 박제된 문화로 잔명을 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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