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 풍경] 어느 고수의 이야기

입력 2016-07-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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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느 자유인이 있다. 하는 일도 자유롭고 영혼도 자유롭다. 예순다섯이 넘어도 겨울이면 스키를 타고 다니고 여름이면 윈드서핑과 요트를 타러 다닌다. 돈 없으면 못할 취미활동 같은데 돈 없이도 그걸 즐긴다. 아래는 그분이 몇 년 전 자신이 속한 윈드서핑 동호회 사람들끼리 갈라져서 반목할 때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이제 충분히들 하셨습니까?

바람이 힘차게, 세게, 그야말로 겁나게 불어오면 누가 뭐라지 않아도 바다의 일은 정리가 됩니다. 바람 앞에 뼈와 살이 자동적으로 추려진다는 얘깁니다. 바람의 말로 의역하자면 한 번 목숨이 추려지면 자연의 무서움을 알고 겸손해진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어디어디 무슨 산에 등정한다고 자랑하고 어디에 원정 간다고 합니다. 그 ‘정(征)’이라는 게 무얼 정복한다는 말 같은데, 초모룽마, 마나슬루, 융프라우, 킬리만자로에 올라 그 사람들 얼마나 머무는지요? 거기에 집을 짓고 밥을 해먹고 사는 사람 있는가요? 사람이 산을 정복하고, 바다를 정복하고, 바람을 정복하고 있습니까? 배웅하는 사람들은 요란해도 그분들 모두 그냥 겸손하게 다녀오는 거지요.

프랑스에 매년 겨울이면 치르는 ‘방데 글로버’라는 요트 제전이 있습니다. 3개월 동안 남극을 빙 돌아오는 장장 4만3000㎞ 경주에 세계 요트 고수들 중에서도 흔한 말로 ‘명(命)’을 떼어놓은 사람들만 출전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단독 항해해야 하고, 30노트의 물보라와 바람 속에 산더미 같은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 다음으로 신을 향해, 아니 신의 영역 밖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이 바람과 파도 앞에 과연 오만할까요? 매년 대회가 끝나면 실종자가 생기고 어떤 해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도 먼저 다녀온 오만함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다시 바다 위에 돛을 올립니다. 자연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요.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은 바람을 참 좋아하지요. 바람이 무언가요? 그것이 자연 아닌가요? 우리가 하는 윈드서핑은 바람에 적응하고 바람을 이용하는 놀이이지 바람과 싸워 이겨내려는 싸움이 아닙니다. 하물며 함께 배를 타고 파도를 타는 사람끼리입니까?

한 가지만 얘기하지요. 옛날에 누구보다 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 방마다 용의 그림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런 기다림 끝에 진짜 용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 어떻게 했을까요? 놀라 도망쳤습니다.

예부터 진정 고수는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람 앞에 서는 사람인데, 오늘 제 얘기가 길었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이 짓 역시 하수의 짓이라는 것이지요. 자, 하수인 저도 닫고 여러분도 다들 이만 여기서 닫지요.

경남 사천시에 사는 내 인생의 선배 안길식 님의 글인데 읽을수록 어느 고수의 삶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본격적으로 다가온 여름 휴가철에 산으로 떠나든 바다로 떠나든 자연과 함께하기에 앞서 이 글을 한번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올린다. 이 선배의 말대로 자연과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이 자연 앞에 겸손함을 갖는 일일 것이다. 다들 정복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여름, 시원한 여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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