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강남패치, ‘까발려주마’가 무서운 진짜 이유

입력 2016-07-11 10:58 수정 2016-08-3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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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뉴미디어부 모바일팀장

“기자님, 안젤리나 졸리 닮으셨다면서요?”

이 한마디가 사달의 시작이었다. 수년 전 일이다.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전화연결로 뉴스를 브리핑하는 코너를 맡고 있었다. 장난기 많은 연예인 진행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내게 졸리 운운하기 시작했다. “절대 아닙니다”라고 응수했지만 그의 ‘졸리 멘트’는 며칠 계속됐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알려 준 소식.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내 사진이 떴다는 거였다. 어떤 청취자가 내가 다니는 회사 홈페이지 구성원난의 사진을 갖다 놓았다. 뿐만 아니었다. 정확히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키와 체중, 성격, 심지어는 ‘알려진 주량’과 사는 곳까지 나와 있었다. 소위 ‘신상이 털린’ 거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불쾌감과 공포감. “졸리는 무슨, 개뿔”같은 댓글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나선 듯한 역겨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일반인 신상털기’가 극성이다. 지난달 나온 ‘강남패치’가 시작이다. 화류계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패치’는 연예인 특종보도로 유명한 매체 이름에서 따왔다. 지금은 계정이 없어졌지만 며칠 만에 팔로어 수가 1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뒤를 이어 ‘패치’ 이름을 딴 유사한 계정들이 속속 등장했다. 성범죄나 간통을 저지른 남성들의 신상을 공개한 ‘한남패치’,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남성들을 알려주는 ‘창놈패치’, 성병에 걸린 남성들 신상이라며 ‘성병패치’까지 나왔다. 며칠 전엔 지하철 임산부 전용석에 앉은 남성의 사진을 공개하는 ‘오메가패치’로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패치 계정들마다 막무가내 돌 던지기식의 악의적인 댓글들이 난무한다. 현재 SNS상에선 이런 일반인 신상털기 계정이 수십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경찰은 피해신고가 접수된 일부 계정들에 대해 수사 중이다.

도대체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신상털기를 할까? 신상털기의 배경에는 개인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개인적인 심리 요인은 ‘능력자’로 인정받기 원하는 욕구와 타깃이 된 이들의 정보를 폭로하면서 느끼는 일그러진 성취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자극하는 건 소영웅주의다. ‘내가 다 까발려주마’ 식의 헛된 영웅심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훼손 등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알면서도 “고소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이다.

한때 ‘네티즌 수사대’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이들이(물론 폐해도 적지 않았지만) 치졸한 범죄자가 된 이면엔 이런 개인적 심리 외에도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즉 법이나 언론과 같은 기존 체제가 사회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패치 계정들을 보라. 아예 직접 의제설정을 제시하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라는 이름의 무리가 주어진 사회문제 속의 신상털기를 했다면 패치 계정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이들을 고발하고 단죄하겠다는 이름 아래 의제를 만들어 확산시킨다. 이번 패치 계정만 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들을 폭로하는 내용들이다.

패치 계정 뒤에는 사회구조에 대한 불신이 있다. 타인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고 어긋난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되게 만든 사회체계의 문제다. 국가와 사회를 믿을 수 없게 된 나라. 올해만 해도 어떤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관피아와 정피아에 이은 메피아,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의 비리와 여전한 대기업 경영의혹, 법조계의 짬짜미 등 도대체가 믿고 의지할 사회체계와 구조란 명백히 실종상태다.

국회, 사법부, 검경, 행정부, 언론, 대기업의 행태에 실망한 이들이 패치 계정이라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거라면 검색 덕후들의 찌질한 횡포로만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신상을 털려본 불쾌한 기억보다 신뢰를 상실해가는 국가라는 생각이 더 공포스런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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