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추모식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부부, 해리 왕자 등 영국 왕실 가족,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브렉시트 결정 8일 만에 양국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이제 다시 시련기를 맞은 양국 간의 오랜 ‘애증 관계’(‘a Love-Hate Relationship’)를 회상하는 순간이었다.
불과 34㎞의 도버 해협(프랑스식 명칭:칼레 해협) 횡단으로 연결되는 프랑스와 영국. 이 두 나라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기본 가치를 공유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는 가까운 이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불신의 알비온’(‘Perfide Albion’)이라 불리는 영국이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우호 협력 관계로 전환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1904년 4월 8일 영국과 프랑스는 Entente Cordiale(영불화친(和親)협정)를 체결, 양국 간의 식민지 정책의 대립을 해소하고 백년전쟁,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식민지 경쟁, 나폴레옹 전쟁 등 천년에 걸친 적대 관계를 청산한다. 이 협상은 동맹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후 1차 대전 때 대독 동맹의 초석이 된다.
그 후 2차 대전 때 영국은 드골의 망명 정부에 피난처를 제공하고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구출하는 데 미국과 함께 앞장선다. 나폴레옹을 타도하기 위해 프로이센과 연합했던 영국이 이제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EU와 NATO의 회원국으로, 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국제무대에서 공조한다.
현재 영국에는 약 35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에는 약 40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다. 영국해협<영국: the (English) Channel, 프랑스: La Manche>은 세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해로로 도버 등 영국의 6개 도시와 칼레 등 프랑스의 9개 도시를 잇는 연락선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 또 1994년 준공된 유로 터널(Channel Tunnel; 프랑스: Le tunnel sous la Manche)은 이용자 수가 연 2000만 명에 달한다.
‘솜전투’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프랑스와 올랑드 대통령은 영국은 (프랑스의) ‘동맹이자 우방’으로 계속 남을 것이지만 브렉시트는 ‘되돌릴 수 없다(irrèvocable)’고 단호하게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은 ‘영국의 탈퇴 절차를 빨리 마무리하자’는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영국은 EU 가입(1973) 이후 공동 정책 수립을 통한 ‘경제 통합의 심화’ 과정에서 사사건건 유보적 입장을 취해 왔다. 따라서 이번 브렉시트 사태는 언젠가는 한 번 거쳐야 하는 절차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파리 정치대학의 미라 캄다르(Mira Kamdar)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영국은 유로화를 거부하고 이 밖에도 다른 예외를 요구하면서 여타 EU 회원국들의 심기를 건드려왔다며 “그들은(영국인들은) 진정으로 유럽이 되기를 원한 적이 없으니 이제 떠나게 내버려 두어라”(“They never really wanted to be European. Let them go”)는 필자와 프랑스인 남편 간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한편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중의 한 명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르몽드와의 회견에서 EU 탈퇴는 ‘연합왕국(United Kindom)의 자살 행위’(‘un suicide pour le Royaume-Uni’)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브렉시트는) “‘유럽’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l’ Europen’est pas irrèversible’)라는 생각을 심어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술 발전, 민주주의, 인구 증가, 세계화 등 ‘행복한 20세기’의 조건이 충족되었던 1910년에도 ‘폐쇄 정책이 야만 행위를 야기했다’며 민주적이고 행복한 세계화의 조건이 무르익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회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변화가 없이는 2025~2030년에 3차 세계대전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이를 막는 길은 유럽이 단결하고 아프리카를 개발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21세기 자본론’(Le Capital au XXIe siècle)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는 르몽드에 실린 ‘브렉시트 이후 유럽 건설하기’ 제하 칼럼에서 브렉시트 찬성표는 유럽연합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반(反)이민 반세계화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외국인 혐오증(xenophobe)은 프랑스의 ‘국민전선(FN),’ 미국의 트럼프 현상, 그리고 영국의 섬나라 특성(l’ insularitebrèitannique)에서 모두 나타나며 ‘허무주의적이고 비이성적인(nihiliste et irrationnel)’ 속성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민 근로자와 외국 문화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브렉시트 사태로) 유럽 건설의 꿈을 포기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며 유럽 의회를 양원제로 만들어 시민들이 직선한 의원들과 각국 의회 대표들로 구성된 이원 조직으로 개혁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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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共和의 역사, 그에 대한 반기…그래도 르펜은 아니지?
프랑스 정부와 재계는 브렉시트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 6일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금융인들의 포럼인 ‘Forum international de Paris Europlace’에 프랑스 총리로는 이례적으로 참석, ‘Welcome’이라는 영어 단어까지 써가며 “파리가 ‘유럽 제1의 금융 중심’(‘le premier centre financier d’Europe’)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에는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île-de-France, 프랑스 수도권) 단체장과 안 이달고 파리 시장까지 동행했다.
프랑스는 이날 기업 법인세율을 기존 33%에서 28%로 5%포인트 내리는 방안을 확정했다. 영국을 탈출하는 기업과 투자가들을 겨냥한 유인책이다. 브렉시트가 시행되면 많은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영국을 떠나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1만~3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에는 영국 특유의 복합적인 배경이 있지만 이의 도화선이 된 반(反)이민 정서에 관해서는 프랑스도 자유롭지 않다. 10%가 넘는 높은 실업률과 테러 위험의 상존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47, 여)는 프랑스도 EU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년 4월 23일과 5월 7일(1차 및 결선)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서 EU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르펜은 내년 대선 1차 투표에서 26~30%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편 같은 여론조사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15% 미만의 득표로 1차에서 탈락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변이 없는 한 르펜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제5 공화국 선거의 역사를 보면 대선이건 지방 선거건 극우 정당 출신이 2차 투표에 진출하면 이를 막기 위해 좌우의 주류 정당들이 이념을 초월하여 ‘공화전선’(front rèpublicain)을 형성하는 전통이 있다. ‘공화전선’이란 ‘자유, 평등, 박애’로 집약되는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정치 세력들이 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참패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