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국의 사소한 동향에도 매우 민감한 체질이 됐다. 특히 지난 8일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전격 발표한 이후 국내 시장은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지난 2000년 6월 ‘마늘 파동’을 떠올리는 등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이투데이는 14일 ‘중국경제 전문가’ 이규엽 제주대학교 법과정책연구원 한중금융연구센터장을 만나 사드 배치 이후의 전망과 한국의 대응방안을 물었다. 또 비관론과 낙관론이 교차하는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어봤다. 2012년~2015년 금융감독원 북경대표처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이 센터장은 금융당국 내 ‘중국통’으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경제보복 가능성에 대해 이 센터장은 “중국은 현재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적어도 몇 개월간 한국에 특별한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 센터장은 남중국해 분쟁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중국이 몇 가지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지혜가 한국 정부에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당장은 중국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현안은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이다. 남중국해에는 엄청난 석유자원이 매장돼 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큰 사안이어서 중국 정부는 외교역량을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적어도 몇 개월 이상 끌고 가야 할 문제다. 한국의 사드 문제까지 대응하긴 어렵다.”
△ 남중국해 분쟁 이슈가 끝난 뒤에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
“옛날의 ‘마늘 파동’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SDI와 LG화학이 중국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 들어가려고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가 인증업체 심사를 또다시 보류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건드려 서서히 한국 정부의 반응을 볼 것이다.”
△ 중국이 다음으로 꺼낼 수 있는 수단에는 어떤 것이 있나
“중국은 국내 채권의 20% 안팎을 보유하고 있다. 채권도 무기로 삼을 수 있다. 또 그동안 우리 기업에 제공하던 ‘당근’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압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휴대폰을 팔아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판단을 갖고 있음에도 그대로 뒀다. 불공정거래가격으로 제소해 소송하는 등의 카드도 쓸 수 있다.
사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큰 틀에서 한국의 무역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실물과 금융 모두에서 많은 투자를 했다. 일시에 갑작스럽게 매도할 가능성은 작지만 자신들의 통제력 하에 두는 것이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서 우리 쪽에 금융 챕터를 양보해 준 것도 나중에 채찍으로 쓰고자 자본 의존도를 심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조선시대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했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안보와 외교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먼저 장기적으로 국가적 전략을 확립하고 갈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미국에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중국에는 국내에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충분히 설득하면서 가야 한다고 본다. 양쪽 강대국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
△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결정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다. 영국이 미국과 유럽의 비판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은 장기적인 국가전략 차원에서 중국 위안화 시장과 직거래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민자가 많다든지 하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중국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 중 어느 쪽 시각을 갖고 있나
“낙관론 쪽에 가깝다. 물론 비관론을 주장하는 쪽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중국은 빈부격차가 크고 관리들의 부패가 심하다. 소수민족 분쟁도 많고 공산주의가 너무 절대적이다. 환경오염과 노령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중국 경제는 서구 경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고유한 나름의 룰을 가지고 움직인다. 우리의 시각만으로는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데 한계가 있다.
△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중국 경제를 낙관하는 이유는
“지금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1차 제조업과 2차 제조업은 낮은 원가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왔지만 드론, 우주항공, 바이오 의학 등 중국의 새로운 대체산업은 빠르게 융성하고 있다.
특히 중국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보면 중국경제를 낙관하게 된다. 창의 욕구를 뒷받침해주고 실패를 지탱해주는 기금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인 칭화대 졸업생 1800명 중 7%가 창업을 한다. 중국 칭화대의 벤처기금은 서울대보다 100배 이상 많다.
성장률 수치는 지나간 것들을 보는 것이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백미러’를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꼭 맞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해군을 이순신이 지휘하면 전투에서 이기고 원균이 지휘하면 진다. 국가를 끌어가는 동력에는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 가장 우려되는 중국 경제의 뇌관을 꼽는다면
“공기업의 비효율이 자칫 은행 부실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 정부가 2013년부터 성장률 유지를 위해 은행을 통해 유동성을 많이 풀었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담보 여력이 부족한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주기에 무리가 있다고 봐서 부지가 있고 담보 여력이 풍부한 공기업에 자금이 집중됐다. 그런데 사실상 중국 공기업 중에는 이른바 ‘좀비 기업’이 많다.”
△ 증시 전문가들은 중국 성장률 둔화가 국내 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우려한다
“과거 중국의 성장률은 8%대를 유지했다. 8%대 성장률이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는 ‘보장선’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6%대 성장률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원자재 의존율이 78% 정도 된다. 중국 성장률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실물경제보다 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의 중국 의존도가 0.07%에 불과하다. 우리가 중국 채권을 샀다든지 중국 기업에 투자한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 채권을 많이 쥔 중국이 한국에 대한 판단을 달리할 수 있다는 리스크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중국의 금융리스크에 대해 받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 국내 투자자들이 중국에 투자하려면 어떤 시각을 갖고 접근해야 하나
“실물경제와 비교하면 중국 금융시장은 아직 개방이 더디다. 한국인이 중국에 투자하려면 RQFII(위안화 적격외국인투자자)나 후강퉁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지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은 옛날만 못하다. 이런 점에서 대체투자 또는 사모펀드에 의한 전략적 지분투자 형태가 앞으로 ‘메가트렌드’로 형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정의가 알리바바에 투자한 것도 지분투자다.
여러 IB(투자은행)들이 지하철 공사 같은 것에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 맥쿼리인프라가 우리나라의 서울지하철 9호선에 투자했던 것처럼 중국에 외국자본들이 사모펀드 형태로 투자한다. 중국이 신기술을 영위하고 있는 프로젝트, 공공 영역 등에 사모펀드 형태로 투자한다면 리스크는 줄이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공유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그 밖에 중국 전문가로서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중국은 어차피 우리 민족과 떨어질 수 없는 동북아시아의 커다란 경제 공동체다. 중국은 지난 30년간의 인프라 투자가 거의 끝났다.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하지만 문화권이 다른 서구문화권 국가, 감정적 대립이 있는 일본 등은 중국에서 영업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