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 초등학생 감금 학대사건 발생 이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경찰청 등 관계당국은 의무교육 미취학 및 장기결석 아동에 대해 일제점검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발생한 중대 아동 학대 피해 사례가 다수 드러났다.
이처럼 최근 수년간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아동 보호 및 치료 프로그램이 많이 도입됐지만 아직까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정부가 올 3월 발표한 종합대책을 통해 ‘신고’ 중심이던 기존 대책을 강화하고 부모 등 보호자에 대한 예방적 접근과 조기 발견을 추가했다.
이투데이는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아동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이달 14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김덕헌 이투데이 정치경제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미숙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김일열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과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와 훈육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아동 학대가 반복되고 있다”며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라는 인식으로 지역과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아동학대 실태가 어떤지 짚어보자.
(장화정 관장) “올해 상반기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1만4000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9600건과 비교하면 32% 증가했다. 올해 전체 신고는 2만 건이 넘을 전망이다. 지난해 아동 학대 현황을 보면 아동 학대 가해자 10명 중 8명은 친부모다. 계모나 계부는 4%도 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아동 학대 신고건 중 기초생활수급 대상 가정은 16%에 불과했다. 비수급 일반 가정 안에서의 학대가 68%나 됐다. 반면 재학대 건수를 보면 기초생활수급 대상 가정이 56%로 올라간다.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저소득층이 훨씬 더 학대를 지속하고 있었다.”
(김미숙 연구위원) “2013년 실태조사에서 아동 학대를 경험한 비율이 42.2%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동의 절반 정도가 학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학대의 정의가 굉장히 넓다. 우리는 때리는 것만 학대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에서는 병원에 안 데리고 간 것은 물론이고 부부싸움을 목격한 것도 학대로 본다.”
(박명숙 교수) “우리나라 부모는 훈육을 이유로 한 체벌이 당연시되고,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우리의 아동 학대 범주는 서구에 비해 협소하다. 외국은 날씨가 더운데 아동이 긴 옷을 입고 있으면 방임으로 규정해 신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학대로 보지 않는다. 아동 학대는 일반적인 범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밥을 안 주거나 아픈데도 병원에 안 데려가는 것을 비롯해 사망 사고까지 학대 범위가 광범위하다.
(김일열 과장) “2013년 말 발생한 울주 아동 학대 사망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최근 몇 년간 아동학대 신고 및 적발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같은 영향이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미국이나 호주 등과 비교해 여전히 낮다. 물론 신고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 CCTV를 보고 온 국민이 분노했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아동 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장 관장)“양육 태도 부족, 과도한 경제적 스트레스나 고립, 부부 갈등, 알코올이나 약물 등 아동학대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경제적 빈곤 상황도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박 교수) “아동 학대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실직, 빈곤, 가족갈등, 사회적 차별 등 스트레스 유발 요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되는데 가장 쉬운 상대가 힘이 약한 어린아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교육이 수반돼야 하는데.
(김 과장) “가해자가 처벌을 받으면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처벌까지 가지 않은 사건도 가정법원에서 교육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경미한 경우에도 부모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일반적인 경우 정부에서 하고자 하는 ‘생애주기별 부모교육’은 좋은 부모가 되는 교육이다. 교과 과정에도 포함하고 군대에서도 교육받을 기회를 주고 혼인 신고나 양육수당 신청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박 교수) “생애주기별 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 학대 가해자가 됐을 때 의무적으로 받는 교육 이외에 생애 발달 단계별로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알을 부화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생명을 키우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폭력 교육을 많이 접해서 민감해져 있는 것처럼, 아동 학대 교육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외와 비교하면 우리의 시스템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박 교수)“해외는 가해자 처벌이 강력하고 치료 프로그램도 전문화 돼 있다. 학대 가해자는 재학대 확률이 높아 치료가 중요하지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예방에 있어서도 해외는 아동 학대의 신호를 미리 찾아내 지원하는 것이 잘 돼 있다.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을 사전에 찾아 예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장 관장)“예방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가해자에 대해 처벌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법원은 부모가 아이를 때려서 숨지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관대하게 처벌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일명‘원영이 사건’에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이 구형됐지만 법원의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 처벌, 치료, 예방에 있어서 총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김 박사)“아이를 분리했다가 회복된 이후 원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다시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는 많이 미흡하다. 또한 우리나라에 없는 프로그램이 바로 ‘아동 전문 가정위탁제도’이다. 쉼터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 개선과 시스템 개선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장 관장)“현재 아이들이 머무는 쉼터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선생님들은 48시간 일을 하지만 처우 단가가 낮다. 장애 아동이 1명이라도 있으면 선생님이 거기에 매달려 쉼터 기능이 마비된다. 남녀 구분도 필요하다. 아동 학대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지만 싸울 군인들이 없다. 관련 인프라와 처우 개선 없이는 아동 학대 문제가 개선될 수 없다.”
(김 박사)“부모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조건 없이 존중받아야 하는 공공재이자 국가의 미래로 생각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신고의무자는 전 국민이다. 항상 누구든 어떤 아이에 대해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박 교수)“아동 학대 문제를 아동에만 국한하지 말고 가족 전체 문제로 봐야 한다. 피해 아동이 격리되도 남은 나머지 가족 구성원도 피해자다. 아동 학대를 목격한 미성년 자녀들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동일한 치료를 받는 것이 의무화 돼야 한다. 많은 연구에서 어린 시절 아동 학대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 사회적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온다. 지금 개입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미래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투자다.”
(김 과장)“인프라와 종사자 처우 문제는 숙제인 것 같다. 시스템이 구축 돼 가고 있는 과정이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시스템은 이미 구축됐다. 이제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예방’과 ‘발견’이다. 부모 교육을 통해 인식 개선하고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등 조기 발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학대의 위험인자를 분석하고 사각지대를 발굴해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