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1899.11.9~1931.7.23)이라는 놈,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그놈이 일본 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 다닐 위인은 아냐. 일본 사회라면 든든히 한 자리 잡을 만한 놈인데 아깝지 아까워.” 1967년 출간된 ‘신동아’ 5월호에는 일본 고등계 경찰관이 타계한 그를 이렇게 칭찬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방정환은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를 치열하게 살아내다 32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다. 호는 소파(小波).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난 그는 미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린학교(현 선린인터넷고)에 들어갔지만 형편이 안 좋아 그만뒀다. 1917년 독립운동가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했다. 같은 해에 그는 ‘청년구락부’를 만들어 청년운동을 벌였다.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와 일본 도요(東洋)대를 나온 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창립해 소년운동에 나섰다. 1922년에는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제정했다. 이어 1923년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편집해 서울 개벽사에서 발행을 대행한 월간지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을 열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 장을 나눠줬다. 1923년엔 일본 도쿄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했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를 개최했다. 이어 1928년 그는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를 초청해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열었다.
1957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새싹회가 ‘소파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1971년 40주기를 맞아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1987년 서울어린이대공원 이전)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