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제2 이태양ㆍ안지만 시간문제”…스포츠토토, 여가와 도박 사이

입력 2016-07-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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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C 다이노스 홈페이지)
(출처= NC 다이노스 홈페이지)

NC다이노스 이태양 선수가 승부조작 혐의에 휘말렸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특정 게임에서 상대 팀에게 고의로 사구를 내줘 승부를 조작했다고 하네요. 그 대가로 브로커에게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는 더이상 마운드 위에 설 수 없게 됩니다.

삼성 라이온즈 안지만 선수 역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는데요. 지인이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하는데 1억 원을 대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안 선수는 “음식점을 차리는 줄 알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해외원정 도박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검은 유혹에 안전지대는 없다. 제2 이태양ㆍ안지만은 시간문제다. 스포츠토토가 합법이라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네이버 ID ‘baet****’)

기사 댓글에서 팬들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사설토토(불법 도박 사이트)지만, 검은 유혹을 원천 차단하려면 모태인 스포츠토토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네요. ‘열 사람이 살펴도 한 도둑 못 잡는다’는 논리죠. 실제로 지난해 한 대학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스포츠선수 20명 중 1명(5.5%)이 승부조작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존폐를 따지기에 앞서 스포츠토토의 역사(?)부터 살펴볼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토토가 출시된 건 20년이 채 안 됩니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10월부터 판매됐죠. 축구와 농구를 시작으로 2004년 야구ㆍ골프, 2006년 씨름ㆍ배구 상품까지 발매되면서 다양한 베팅 게임 수요를 흡수했습니다.

3,450,000,000,000원.

지난해 스포츠토토가 번 돈인데요. 발매 첫해 28억 원에 불과하던 스포츠토토 매출액은 △2004년 1400억 원 △2007년 1조3700억 원 △2011년 1조8500억 원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번 돈의 60%는 베팅을 건 사람에게 돌아가고요. 나머지 40%는 국민체육 진흥기금이나, 공공체육시설 개ㆍ보수, 대회조직위 지원 등에 사용됩니다.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스포츠토토 참여가 관람스포츠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스포츠토토 참여가 관람스포츠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스포츠토토를 ‘여가’로 즐겼습니다. 2008년 한 대학이 발표한 연구논문을 보면요. 사람들에게 스포츠토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물었더니 대다수가 ‘동료와 친지가 같이 즐길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다’, ‘주변 사람 시선이 긍정적이다’는 대답도 많았고요. ‘도박성이 있다’는 답변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죠. ‘당신도 행운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한 장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란 홍보문구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입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합법적 베팅 게임이란 점도 “내가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하죠.

실제 3년 전 한 대학에서 일반인 22명(월 200만 원 이상 베팅)을 상대로 ‘스포츠 토토’의 중독성향을 살펴봤더니 △한방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베팅 금액 통제력이 상실됐으며 △경기분석에 대한 맹신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을 위한다는 충성심 호소와 △정부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책임 전가 성향도 공통으로 나타났고요.

더 큰 문제는 사설토토죠. 그나마 스포츠토토는 구매 횟수와 베팅 금액을 제한하고 청소년의 구매를 원천차단하고 있지만 사설토토는 말 그대로 무법천지입니다. 이번 이태양ㆍ안지만 선수가 연루된 사설토토의 지난해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무려 31조 원(추정치)에 달합니다. 스포츠토토보다 10배 더 크죠. 국내 경기는 물론, 실제 열리는지도 불분명한 해외 작은 게임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고 합니다.

(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 투표권사업실)
(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 투표권사업실)

미국의 야구선수 피트 로즈(Peter Edward Rose)라고 아십니까?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안타(4256개) 기록을 세워 ‘전설의 타자’로 불리죠. 하지만 그는 1987년 신시내티 감독 재임 시절, 승부조작을 한 사실이 드러나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됐습니다. 올해 초 구단이 그의 등 번호 ‘14번’을 영구 결번하면서 30년 만에 간신히 체면은 차렸지만, 그의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여전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역시 이태양 선수의 영구제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죠. 혐의가 입증되면 유망주, 전 국가대표 타이틀을 빼앗기고 그 역시 피터 로즈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검은 손’을 잡은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팬들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판돈’을 깔아준 건 우리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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