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테러사건을 추적해온 미국과 유럽 언론의 기사 스타일이 지난 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 지중해 휴양도시 니스에서 터진 트럭 테러를 기점으로 크게 선회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의 일간지들이 예전처럼 현장에서 사살된 프랑스 운전사 모하메드 라후에유 브렐(31)의 출신지인 튀니지에 앞다퉈 기자를 특파, 범인의 소년 시절이나 프랑스로 이민 온 사연을 대서특필할 법하건만, 그런 속보 경쟁에 나선 신문은 이제 하나도 없습니다.
일간지뿐만이 아닙니다. 일간지의 속보경쟁에 으레 심층보도로 맞서온 근착(近着) 시사주간지 타임이나 뉴스위크, 이코노미스트의 어디를 뒤져봐도 니스 테러 관련 속보는 한 토막도 찾을 수 없습니다. 속보를 대신할, 아니 오히려 그 속보를 훨씬 능가할 새로운 스타일의 기사 접근법이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니스의 트럭 테러 이후 신문이나 방송마다 약속이나 한 듯 머리기사로 달고 나오는 뉴스의 제목은 ‘테러의 심리학’, ‘테러리스트의 심리학’, ‘테러리스트가 된 동기’ 또는 ‘테러리즘의 정치학’입니다.
또 하나의 언론 변화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 언론들이 조심스레 다뤄온 특정 종교와 테러와의 연루가 이번 니스의 트럭 테러를 계기로 공론화되어, 위 네 가지 제목 가운데 하나를 빌려 올리는 기사 거개가 테러의 주범으로 무슬림을 대놓고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 229만 부를 찍는 미 최대 부수의 일간지 USA투데이가 니스의 트럭 테러 발생 다음 날인 7월 15일 미 여론조사기관 Few가 미국 내 거주하는 성인 무슬림(회교도) 180만 명의 성향을 조사해 보도한 내용을 축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살폭파범들이 민간인에 대해 저지르는 테러는 정당화되는가?’라는 질문에 86%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변했으나 나머지 14% 중 7%가 ‘이따금 정당화된다’, 1%는 ‘자주 정당화된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에 살고 있는 10만 명의 무슬림은 그들의 종교 이름으로 자살폭탄 투척을 감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수치를 지구상에 살고 있는 16억 명의 무슬림에 확대 적용하면 1억 명의 이슬람 자살폭파범들이 이따금 또는 수시로 자살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선다.”
이 신문은 이번 Few 조사 내용에 대한 윌리엄 클라크 전 보스턴대 종교학과 교수가 내리는 진단도 함께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슬림들이 당신과는 전혀 상이한 가치 기준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예로 파키스탄이나 이집트에 살고 있는 무슬림의 82%는 지금도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고, 절도범의 손을 자르고,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올해로 지령(誌齡) 170년이 되는 미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최신호에 따르면 서기 2000년 한 해 3329명에 불과했던 테러 관련 사망자 수가 21세기 들어 10배로 껑충 뛰어 2014년 한 해에만 3만2685명으로 폭증했고, 2013년부터 2014년 1년 사이에만 80%나 치솟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테러리즘에 관한 역사적 고찰도 병행돼, 기원전 68년 로마 항구도시 오스티아(Ostia)시가 지금의 북 에레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이나 PLO와 유사한 일단의 암살단에 의해 불바다로 바뀌고, 두 명의 로마 원로원 의원들이 이들에 의해 납치된 사례도 나타나 있습니다.
‘한 IS 테러 대원의 심리’라는 책을 낸 미국 인류학자 스캇 아틀란이 소개하는 IS의 테러리스트 모병 과정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동부 지중해 연안 출신 테러분자들 거개가 초졸 수준에 종교보다는 잔인성으로 무장된 반면, 유럽 내륙에서 모집한 테러분자들의 경우 우정과 친교, 이상주의로 무장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영국은 어떤가. 지금까지 500여 명의 영국인들이 시리아와 이라크에 잠입, 극렬 테러단체인 지하드(聖戰) 대원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영국 전역을 경악과 공포에 몰아넣은 사건은 일명 ‘지하디 존’으로 불려온 극렬분자가 2014년 9월 제임스 폴리와 스팁즈 소트로프 등 미국인 기자 두 명을 연쇄 참수하는 과정에서 런던 악센트를 사용, 이 사실을 영국 언론이 공개해 그가 바로 아랍계 영국인임을 밝혀내면서부터입니다.
참수에 참여하는 극렬분자가 갖춰야 할 몇몇 자격과 요건에 관해서도 소상히 밝혀져 있습니다. 영국 리즈(Leeds)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티브 테일러 박사에 따르면 타인에 대해 누구나 갖기 마련인 동정심이나 이해심과의 결별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정상적 사회라면 으레 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분류되는 이런 심리적 불구자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참수 전담 극렬분자가 되는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니스 트럭 테러의 현장 국가인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코란을 손에서 떼지 않았던 무슬림이었듯(박스기사 참조), 이 나라야말로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외래문화나 종교에 가장 개방적인 나라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IS 극렬분자들의 침투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는 등식도 성립합니다. 그 이유는 이민자가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데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위치나 교육이 타 유럽국 이민자보다 월등히 처진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예컨대 미국 이민자의 경우 한 세대(30년), 유럽 이민자의 경우 3세대가 지나면 정착이 가능하나 프랑스 이민자만은 3세대가 지나도 개선은커녕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해 그 정도가 타 지역 이민자의 5~19배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이슬람 분포는 공식적으로는 7~8%에 불과하나, 이런 기회 박탈로 인해 18~24세의 프랑스 청년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이미 IS 세력에 대한 동조자, 그것도 적극 동조자로 바뀐 걸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니스의 트럭 테러를 다루는 과정에서 미국과 서구 언론이 보인 이 같은 스타일의 변화는 결코 취재보도의 낙후와는 무관한, 오히려 진보적이고 거시적 접근이라는 소회가 듭니다. 니스 테러범인 한 무슬림 운전자의 소년 시절이나 프랑스 이민 경위나 캐는 기존의 미시적 취재로는 이슬람이라는 매머드급 조직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교전 당사국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고 전선에 임한 미군 장병들의 정훈(政訓) 자료로 미 국무부가 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4년, 당시 컬럼비아대학 인류학 여교수 루스 베네딕트에게 ‘국화와 칼’이라는 명저의 집필을 의뢰한 것과 유사한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테러 취재의 스타일 변화를 기해 일본 자리가 무슬림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집트 원정 때 코란 탐독한 나폴레옹, 그도 무슬림이었다
나폴레옹이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 대신 굳이 무슬림으로 바뀐 이유나 그 시점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평정으로 일약 전국적 인물로 바뀐 그가 이집트 원정에 올라 그의 원정함대가 알렉산드리아항(港)에 닿을 즈음, 그가 선상에서 6주간 탐독했던 책이 코란이었다는 사실은 영국의 역사 작가 빈센트 크로닌이 남긴 ‘나폴레옹’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이집트의 카디스(무슬림 법관), 쉬크(족장), 이맘(회교僧)들을 모아놓고 선포한 첫 포고령은 “내가 진정한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너희 국민들에게 고하라!”였고, 그 대가로 프랑스군 주둔지역 부근에 둘레 1.5마일 크기의 모스크(회교사원)를 짓겠노라는 약속까지 합니다.
이집트 종교지도자들이 나폴레옹에게 무슬림이 되는 징표로 할례와 (포도주의) 금주를 요청하자 그는 잠시 주춤했으나 곧이어 타협이 이뤄집니다. 그가 향후 이슬람교를 적극 보호하고, 알라 신의 메신저와 선지자(모하메드)의 친구가 되겠다는 선언을 채택했고, 그는 실제로 유럽 전역에서 벌인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그 영광을 알라신에게 돌림으로써 이 선언을 준수한 걸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훗날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이 대관식에서 교황이 씌워주는 왕관을 거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아 쓴 대목에 대한 해석은 달라져야 합니다. 교황의 왕관을 거부한 이유가 나폴레옹의 권위나 오만 때문이 아니라, 당시 이미 독실한 무슬림으로 바뀌어 있던 그에게 교황의 권위는 무슬림 교리상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