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1818.7.30~1848.12.19)는 19세기 도덕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진 문학적 혁명가였다.” 영국 브리스틀대 정치학과 교수 대니얼 버트는 자신의 저서 ‘호모 리테라리우스’에서 브론테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에서 아일랜드인 성공회 목사인 패트릭 브론테를 아버지로 출생했다. 문학가 집안으로 언니는 샬럿(소설 ‘제인 에어’ 작가), 여동생은 앤(소설 ‘애그니스 그레이’ 작가)이었다. 남동생은 아편에 중독돼 젊은 시절 죽었다. 어머니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브론테는 언니, 여동생과 함께 이모 밑에서 자랐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 학교를 설립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848년 그는 아버지 교회에 있던 부목사와 혼인했으나 결핵으로 죽었다.
그는 언니, 여동생과 함께 필명으로 시집을 출판했지만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시집을 내놓은 뒤 요크셔의 벌판과 버려진 집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을 담은 소설 ‘폭풍의 언덕’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비평가들로부터 “음락한 작품”이라는 안 좋은 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기에는 시대가 너무 일렀던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영국 작가 서머셋 몸 등에 의해 재평가 받았다.
재평가와 더불어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됐다. 1920년대 최초로 영화(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39년엔 미국 MGM이 흑백유성영화로 제작했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이다. 이 영화는 소설의 뒷부분은 제외하고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영혼이 패니스턴 바위를 걸어가는 장면을 피날레로 삼아 순수한 사랑을 부각했다. 1940년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09년 2월 15일 한국의 예술전문 유선방송채널인 예당 Art-TV에서 심야에 방영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