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은행 감독 협의체인 바젤위원회가 은행권의 건전성 기준은 날로 강화하면서도 부실화된 다수의 유럽은행들을 위해 다소 느슨한 자본 기준을 세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젤위원회는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적절하게 규제하기 위해 단계별로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 기준은 바젤 3단계 논의 시점에 유럽은행들의 부실화 우려가 높아지면서 낸 절충안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탈리아 '좀비은행'이 유럽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까지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최고조로 치솟는 등 글로벌 은행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부실은행 자본 확충에 필요한 공적자금 규모가 1500억유로(약 19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유럽은행 부실화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브렉시트 충격 완화에도 유럽은행에 대한 우려는 확대’라는 보고서를 냈다.
김 연구원은 브렉시트 투표 이후 혼란에 빠졌던 세계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지만, 독일의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스위스의 투자은행인 ‘크레딧 스위스’ 등 유럽은행들은 주가가 급락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유럽은행들의 부실채권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고, 코코본드 또한 불안 요인으로 지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을 회복한 미국 은행과 달리 유럽은행은 부실자산 축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2009년 5.0%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낮아져 지난해에는 1.5%를 기록했다.
반면 유럽연합(EU)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재정위기를 거쳐 2012년 6.7%까지 높아졌다가 조금씩 하락했지만 지난해 5.6%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으로 그리스(34.7%), 이탈리아(18.0%), 아일랜드(14.9%), 포르투갈(12.8%) 등에서 부실채권 비율이 높았다.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하지만 유럽 금융당국은 정책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김 연구원은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경기 회복을 지원하고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해서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 위험을 줄이려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폈지만, 은행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유럽은행들이 크게 늘려온 코코본드는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험 요인이다.
코코본드는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내려가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채무가 상각되는 채권이다.
올해 초 도이체방크가 코코본드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유럽의 경제 여건이 견고하지 못한 상황에서 EU 및 유로존 당국이 무리하게 재정ㆍ금융 부문의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럽은행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이어 유럽발 금융불안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변동성이 커질 우려에 대비해야 한다며 “유럽의 정치ㆍ경제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국내에 유입된 외국계 자금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