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팬오션의 위기는 어느 정도 감지됐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상당히 초호황기 때부터 지나치게 무분별한 투자를 하며 배를 발주했던 게 원인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금융위기가 닥치자 그 많은 선복량을 물동량이 따라가지 못했다.
STX팬오션은 2008년 매출액 10조2310억 원, 영업이익 6790억 원을 기록할 만큼 뛰어난 경영실적을 달성했지만, 2011년부터 심각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STX그룹은 팬오션 매각을 결정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SOS를 청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팬오션의 부실 규모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산업은행은 수술대에 오른 팬오션의 배를 가르기도 전에 수술을 포기하고, 결국 법정관리 행을 결정했다.
당시 팬오션의 영업 활동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300여 척에 달했던 선박은 삽시간에 230여 척으로 줄었고, 이 중 100여 척은 이미 운항을 멈춘 상황이었다. 급기야 전 세계 선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법정관리 신청이 오히려 팬오션 회생의 발목을 잡았다는 우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때부터 해운업계의 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현실화·가시화됐다. 또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9년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 선언을 검토했지만 정부의 발빠른 대처로 곧바로 회생한 세계 3위 해운업체인 프랑스 CMA-CGM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때도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회생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나 금융권의 현금지원”이라며 “글로벌 ‘빅5’에 들어가는 대형 컨테이너사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우리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딱히 없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2013년이 지나가기가 무섭게 또 한 번 위기의 바람이 몰아쳤다. 팬오션의 여파가 다 가시기도 전에 한진해운, 현대상선 모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특단의 조치인 ‘조 단위 확보 자구안’을 발표했다. 자구안에는 알짜 계열사는 물론 애지중지 관리했던 선박들, 터미널 등 돈 되는 건 다 팔겠다는 내용이 꽉 차 있어 마음이 쓰렸다. 어쨌든 유동성 확보가 너무나도 시급했던 두 회사 모두 100%가 넘는 이행률을 보이며 열심히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을 끌어모았지만, 전 세계 해운업 불황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올해 들어 두 회사 모두 자율협약을 개시하며 또 한 번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국내 양대산맥이 구조조정을 통해 무너지는 순간을 우리는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더욱더 슬펐던 것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팬오션을 필두로 잘나가던 해운업계 3인방이 무너지기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변화무쌍하게 벌어졌지만, 딱 하나 변하지 않는 정부는 아직도 그대로 무지, 무관심한 채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