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 22] 사채동결·기업공개촉진…증시 토대 세운 ‘전설의 경제관료’

입력 2016-08-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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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우 전 경제부총리

영국, 미국 등 금융선진국의 자본시장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들 시장에서는 정부관료보다는 민간에서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의 스토리가 많다. 불과 수십 년 전 황무지에서 출발한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초창기 정부와 철저한 계획과 육성이 필요했다. 이렇다 보니 경제관료의 영향을 떼 놓고는 우리 자본시장의 발전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인사에게 자본시장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다수는 단연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언급한다. 자본시장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1970년대 초반 경제부총리였던 남 전 총리가 입안했던 ‘8·3 사채동결조치’와 ‘기업공개촉진법’, 그리고 ‘5·29 긴급조치’ 등을 통해 국내 증시가 본격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기억한다.

◇ ‘한강의 기적’ 손수 일궈낸 서강학파 대부 = 남 전 총리는 자본시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발전사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924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남 전 총리는 1945년 국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친 뒤 1974∼197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한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을 주도한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 전 대통령이 남 전 총리가 펴낸 ‘가격론’을 보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상당히 비판적인데 어디 한 번 직접 맡아서 해보라”며 그를 전격 발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해야 했던 정부는 투자 재원이 필요했다. 남 전 총리는 증권시장의 육성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중요한 열쇠라고 인식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말할 때 제조업과 중화학공업의 발전만을 떠올리지만 실제 남 전 총리는 자본시장의 중요성에도 깊은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업계 원로인 강성진 전 증권협회장도 “특히 남덕우 재무부 장관의 증권시장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고 언급했다.

◇ 기업 옥죄는 살인적인 고금리 ‘동결’ = 남 전 총리가 취임할 당시 기업들은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문제는 살인적인 금리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사채이자율은 평균 월 5% 수준이었고 월 10%대까지 치솟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60~120%인 셈이다. 이 정도 고금리에서는 이윤을 많이 남긴 기업이라도 사채이자를 내는 것이 버거웠다.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주식시장으로 돈이 들어오기도 어려웠다.

1972년 8월 3일 자정, 남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에게 건의해 ‘8.3 조치’(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로 불리는 사채동결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모든 기업과 사채업자가 안은 사채를 정부에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된 사채는 월 1.35%로 이자율을 낮춰줬다. 만일 사채업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기업에 채무를 탕감해주는 과격한 내용도 담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채 동결로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고, 고리사채에서 풀려난 기업들은 금리 인하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 효과로 재무구조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맞은 첫 번째 큰 전환점이었다.

◇ 기업공개 촉진법 단행…증시 덩치 비약적 성장 = 8·3조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쯤 남 전 총리는 자본시장의 두 번째 전환점이 될 정책을 준비했다. 바로 일정 조건의 법인에 대해 기업공개(IPO)를 명령하는 내용의 정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던 남 전 총리의 구상은 그대로 법안이 됐다. 남 전 총리는 1972년 12월 ‘기업공개촉진법’과 1974년 이른바 ‘5·29조치’를 단행했다.

5.29 조치는 정부의 독려에도 기업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대기업들에 여신상 불이익과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는 서슬 퍼런 정책이었다. 기업들의 우려에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68년 34개에 불과했던 상장사가 1976년 274개로 늘어나는 등 주식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기업이 증권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남 전 총리의 정책이 권위주의 정부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정이 지나치게 강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남 전 부총리가 확신과 치밀한 계획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을 크게 도약시켰다는 점에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기업공개실적이 가장 좋았던 1975~1978년 국내 경제는 두자릿수의 실질경제성장률을 실현하기도 했다.

또 당시 남 전 총리는 공개명령에 따르지 않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수차례 엄포를 놓았지만 실제 불이익 조치를 내린 적은 없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학교에 보낸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 전 총리는 이 같은 공로 등을 인정받아 1974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로 승진해 오랫동안 경제발전을 이끈 뒤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도 국무총리를 지냈다. 1983년에는 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무역센터를 만들었다.

2013년 5월 18일 오후 9시 5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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