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이상한 이름, 나쁜 이름, 바른 이름…정명(正名)은 소통의 첫 단추다

입력 2016-08-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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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박사

김영란법, 미래라이프대학, 청년수당…. 최근 언론의 핫이슈가 된 용어다. 이러한 용어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가? 어떤 입장과 주장을 펴느냐에 상관없이 강조되는 게 소통이다. 최근 논란을 살펴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원인은 소통 부재다. 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주체의 작명이든, 유통과정에서의 호명이든 ‘이름’의 잘못이 자리하고 있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작명과 호명은 의도된 것이든, 호도된 것이든 필연적으로 불통을 부른다. 의도와 본질을 가린 분식(粉飾) 이름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혼란을 일으킨다. 엉뚱한 이름은 본질과 맞지 않는 이름이다. 나쁜 이름은 본질을 가리는 이름이다. 최근 각 분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들의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자.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발의자인 김영란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법안은 주지하듯 공직자,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및 그의 배우자가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품 또는 향응을 받을 경우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놓고 가타부타의 논란이 많은 것도 알고 보면 제대로 명칭을 부르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다. 가령 시행 부작용 우려의 대표적 근거가 선의의 피해자 방지 운운할 때 발의자 이름을 딴 현재의 명칭이 아니라 본래 이름 그대로 ‘부정청탁 금지법’이라는 본질을 콕 찍어서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부정청탁 금지’와 농축산업, 자영업 피해가 왜 연결되지?’ 하는 인과관계 의문이 당연히 발생하고 반대 명분도 문제제기 단계에서 원천 봉쇄되지 않았을까. 부정청탁 상한선을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에서 각각 5만 원, 10만 원으로 올리자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절로 낯 뜨겁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둘러싸고 학교, 정확히는 총장 측과 학생 측의 갈등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미래라이프대학’,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기사마다 괄호를 달아 ‘평생교육 단과대학’이라 병기했지만 역시 이해불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반인에게 미래의 삶을 준비하게 해준다는 뜻인가? 은퇴자를 위한 제 2막 준비 대학인가? 아니면 기존의 대학부설 평생교육원과 비슷한 내용인가? 알고 보니 학생을 정원 외로 선발하며 대학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고졸취업자나 3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학점뿐 아니라 4년제 대학 정규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한 대학이라 한다. 이화여대뿐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 주관의 사업명이라 한다. ‘미래 라이프 = 학위취득’이라는 명명의 의식 전제부터가 구태의연하다. 이름은 단지 작명을 넘어 그 사업의 소명과 사명을 짐작케 하는데 작명의 전제부터가 동의하기 힘들다. 정당하고 당당한 소명을 가진 국가 차원의 거시적 교육사업이라면 이름만 듣고도 그 본질을 알수 있게 정곡을 꿰뚫는 이름을 짓고자 보다 노력해야 했다. 설명하고 해명하고 변명해야 하는 이름은 이미 좋은 이름이 아니다.

또 하나의 논란으로 서울시의 청년수당(정식명칭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역시 ‘이름’이 혼란을 부추기는 경우다. 우선 ‘청년’의 대상 연령층 자체가 모호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 실업률을 언급하며 청년층을 15~29세로 한정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선 청년층 대상연령을 20~29세, 고양시의 ‘고양형 청년일자리사업’에선 청년층 범주를 15~34세라 정하고 있다. 각 기관마다 청년의 나이는 그야말로 고무줄 늘이기, 이현령 비현령식인 셈이다. 청년대상 정의에서 보다 더 정확한 초점 맞추기가 필요했다. 또 하나의 키워드인 수당이란 용어 자체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수당(手當)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급료 이외에 정기 또는 수시로 지급되는 보수다. 가족수당·특근수당·주택수당·근무지수당·주말수당 등이 그 용례다. 정해진 봉급 이외에 따로 주는 보수. ‘덤삯’, ‘품삯’이 수당의 적확한 뜻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1년 이상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만 19~29세 청년 구직자 3000명에게 최대 6개월 동안 매월 50만 원씩 지원한다는 것이라 한다. 구직자는 급료를 받지 않는 미취업자일 텐데, 별도의 덤삯을 준다니 적절하고 정확한 이름이 아닌 셈이다.

이름 명(名)의 자원을 살펴보자. 명(名)은 저녁 석(夕) 자에 입 구(口) 자가 합쳐진 글자다. 낮에는 잘 보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찾을 수 있지만 캄캄한 밤에는 이름을 불러야 알게 된다. 예전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캄캄절벽의 어둠에는 어땠겠는가? 밤이 되면 주변이 어두워져 사람을 분간할 수 없어 입으로 누구냐고 이름을 물어봐 구분을 했다는 풀이다. 일본 한자학의 대가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다른 해석을 한다. 명의 석(夕)을 저녁 석이 아닌 제사고기로 풀이한다. 집 안 사당에 제사음식(夕)을 차려놓고 새로운 식구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口) 올리는 제례를 뜻한다고 본다. 혹은 그릇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 각각의 이름을 뜻한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어떤 풀이든 이름은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정체성’의 반영이요,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칭호란 점에선 통한다. 이름은 본질과 정체성과 명분, 지향성 모두가 응축돼 있는 총합체다. 엉뚱한 이름, 나쁜 이름은 제대로 일러지지(謂) 않으니, 상대의 마음에 이르게(至) 하지 못한다.

엉뚱한 용어 혼란,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상황을 접하며 어렵고 다급한 때일수록 ‘정명(正名)’이 최우선으로 급하고도 중요한 사항이라고 한 공자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공자가 정치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바로잡겠다고 말한 것도 바로 정명(正名), 다름 아닌 ‘이름’ 바로 세우기였다. 공자에게 제자 자로가 이런 내용의 질문을 한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시고 정사를 하려고 하시니,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급선무로 하시겠습니까?” 공자는 이에 대해 대답해준다. “정명(正名)을 제일 먼저 하겠다.” 공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로가 바로 반박한다.

“아, 선생님, 현실 사정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급선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명부터 하신다면 (당장에 산적한 각종 시급한 현안들을) 어느 세월에 어떻게 바로잡으시겠습니까?”

시쳇말로 ‘정명이 밥을 먹여주나’라는 제자의 반문에 공자는 단호한 포스로 반박하며 그 효과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정명을 하지 않으면 ①사람들마다 말이 달라 ②말에 순서와 질서가 없어 각자 다르면 어떤 일도 성립되지 않는다. ③일이 성립되지 않으면 의례와 음악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④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며 ⑤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공정을 잃게 된다. 즉 나라든, 조직이든 콩가루 집안이 돼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에 딱 알맞은 이야기 아닌가?

이름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름값을 한다. 본질을 가리거나, 비껴가는 분식(粉飾) 작명 내지 호명은 무지하거나, 무성의하거나, 불순하게 마련이다. 좋은 이름, 정확한 이름이 선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엉뚱한 이름, 나쁜 이름은 오해와 갈등 그리고 혼란을 일으킨다. 이름 자체가 소통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각자 입장에 따라 ‘00라고 쓰고 00라고 읽는다’는 맘대로 해석이 횡행할 때 불신과 불통이 싹튼다. 이름이 바로 서야 생각이 선다. 생각이 서야 조직이, 나라가 산다. 역사 바로 세우기 못지않게 이름 바로 세우기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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