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CEO들의 주식계좌

입력 2016-08-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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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금융시장부장

최근 만난 회계법인의 한 간부는 평소와 달랐다. 항상 친절했던 그가 기업 인수합병(M&A) 정보를 묻자 입을 다물었다.

회계법인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 회계사들이 기업 내용을 속속들이 아는 이유다.

“요즘 회사 분위기 좋지 않아요. 저에게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이번에는 정말 금융당국을 칭찬해 주고 싶다. 회계사 사회에서 내부자 거래에 대한 자정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금융당국의 전격적이고 대대적인 조사가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일부 회계사들이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고 부당 이득을 올리고 있다는 의혹은 많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여러 이유로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2006년의 일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J부원장보와 P부원장보가 쌍두마차처럼 증권 검사와 감독을 주도했다.

증권회사나 회계법인이 벌벌 떨 때의 일이다.

당시 외신에서는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증권사 고위간부, 외환 딜러 등이 불법 주식 거래로 조사를 받는다는 기사가 자주 나왔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이런 류의 기사가 거의 없었다. 금융당국이 조사를 안 하는 건지, 조사를 했는데도 적발하지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법리에 밝은 J부원장보는 조목조목 설명했다. 금감원은 기소권이 없고, 차명계좌를 제대로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증권 검사에 잔뼈가 굵었던 P부장원보는 조사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조사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금융당국의 조사는 10년 가까이 흐른 2015년부터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2013년에 설립된 금융위원회 산하 자본시장조사단이 대대적으로 회계사의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거래건을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회계사 30여 명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조단은 올해도 회계사 약 1만 명의 주식 거래를 전수 조사했는데, 삼일·삼정·안진·한영 회계법인 등 이른바 ‘빅4’를 포함한 다수의 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 20∼30명이 관련 법률 조항을 어기고 감사 대상 기업의 주식을 거래한 사실이 또다시 적발됐다. 조사할 때마다 줄줄이 걸리는 셈이다.

이번에 적발된 한 회계사는 ‘밤의 황제’로 불렸다고 한다. 쉽게 번 돈을 유흥업소에서 흥청망청 썼을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대형은행 HSBC의 고위 간부가 선행매매 혐의로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연방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우리로 치자면 대형은행이나 증권사의 고위 간부가 선행매매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선행매매란 펀드매니저가 기관 명의 계좌로 주식을 매수하기 전에 자기 계좌에서 먼저 사고파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거래를 말한다.

지금은 유명한 금융회사의 오너가 된 A씨는 오래전의 일이지만, 강남에서 잘나가는 주식 브로커였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그는 강남 자금을 쓸어 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가 일했던 강남 지점 수탁액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주식 운용자로서는 처음으로 기업에 주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식을 사 모으기만 한 게 아니라 주주로서 기업 경영진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했고, 회사에 정당한 배당을 요청했다.

지금은 당연한 얘기 같지만 한 명의 증권사 지점장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수십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 주식을 매매했는지, 어떻게 주가를 끌어올렸는지, 차명계좌는 정말 있었는지 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늦었지만, 금융사 CEO들의 계좌를 조사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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