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브라질-뭔가 있을 것만 같은 곳

입력 2016-08-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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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리우올림픽 개회식 중계를 보다가 브라질에 또 가고 싶어졌다. 브라질에 가 본 적은 없다.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는 말이다. 쉬 이뤄질 것 같지 않은 브라질에 대한 동경은 몇 권의 책을 다시 훑어보게 했고, 몇 편의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제목을 검색하게끔 부추겼다.

첫 번째는 미국 소설가 존 그리샴의 소설 ‘유언장(Testament)’이다. 악행으로 거만금을 번 미국 부자의 유언 집행을 위해 그의 딸을 찾아 브라질 아마존 최상류 원주민 마을로 떠나게 된 퇴물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소설이다.

아마존 우림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 ‘브라질’이 빨강 염료를 만드는 빨간 나무를 뜻하는 포르투갈 말이라는데도 나에게 브라질의 색깔은 아마존을 뒤덮은 초록색이며 이 초록색은 빨간색을 포함한 모든 색깔을 압도한다. 코파카바나 해변의 바다와 하늘의 푸른색, 해변 모래와 두둥실 뭉게구름과 코르도바산 위 거대한 예수상의 눈부신 하얀색도 아마존의 녹색 수림대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느낀다. 저 위에서 늘어뜨려진 수백 가닥의 초록색 고무밴드로 광대한 열대우림이 마라카낭 경기장 개회식 무대에서 연출될 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마존의 녹색 바다에 다시 깊이 빠졌다.

두 번째는 역시 미국 소설가 존 업다이크의 소설 ‘브라질’이다. 세계 최악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 출신 흑인 청년과 매우 부유한 고급 관료 집안의 백인 여대생의 사랑을 다룬 작품인데, 마지막에 가서는 주술(呪術)의 힘으로 두 사람의 피부색이 바뀌고 신분도 바뀌며,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여기서도 브라질 여러 지역이 소개되고, 부유한 자와 없는 자의 대조적인 생활상, 자연의 아름다움과 엄혹함이 그려지지만 나는 주술의 힘으로 피부색이 바뀐다는 설정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감히 미국 작가의 소설을 통해 남미소설의 특징이라는 ‘환상적 서사’가 어떤 것인지 감(感)은 잡게 되었노라고 말하곤 한다(남미문학을 잘 아는 분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쓴 부분).

세 번째는 ‘브라질 문화의 틈새’라는 김인규 전 한국일보 브라질 특파원의 현지 체험담이다. 부제(副題)가 ‘봉지아, 브라지우(안녕하세요, 브라질입니다)’인 만큼 앞의 두 책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20년 전에 나왔을 때 재미있게 읽어서 다시 펼쳤다.

앞부분에 ‘브라질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아지노모도를 많이 먹어서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 TV는 유럽 프로축구는 방영하지 않으면서 일본의 J리그는 매주 녹화 방영하고 있다’ 등의 대목이 있었다. 브라질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대단하다는 것인데, 이는 이민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단결할 때는 단결하고, 현지와 조화를 이뤄야 할 때는 철저히 조화를 이룬 초창기 일본 이민자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필자의 해석이 있었다. 브라질 근세사를 보여주는 개회식 장면에 아시아계 사람들로, 의상과 소도구가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간색으로 치장한 일본인 같은 사람들만 등장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틈새’에는 개회식 바로 전날 숨져 우리나라 신문에도 애도의 기사가 실린 성형외과의 이보 삐땅기의 고귀한 삶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이보 삐땅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이클 잭슨 등 할리우드 최상급 연예인들과 유럽의 왕족들이 줄지어 예약할 만큼 세계 제일의 성형외과 의사였으며, 사과처럼 봉긋한 엉덩이를 말하는 소위 애플힙 성형수술을 개발한 선구자로 알려졌지만 3년마다 선착순으로 1500명에게 무료로 성형수술을 해주는,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적 실천을 해온 사실이 더 존경받고 알려져야 할 사람이다.

3년마다 1500명으로 정한 건 부자와 유명인을 유료로 수술하면서 틈틈이 무료로 시술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매주 일요일엔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촌을 들러 성형외과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과목도 무료로 진료해주었다. 숨지기 하루 전 아흔 살의 나이에 휠체어를 탄 채 성화를 봉송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딴 성형외과와 치과가 서울 강남에 있다. 중국 환자들을 겨냥한 듯 제주도에 분원을 낸 곳도 있다. 삐땅기의 의과적 기술만이 아니라 그의 인품과 덕성, 고매한 이상도 갖추었거나 갖추려고 노력하는 곳이라 믿고 싶다. 삐땅기 이야기의 뒷부분에는 ‘브라질 의사들은 언제 어디서든 흰 옷만 입는다. 돌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굳이 애써 의사를 찾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구절도 있었다.

삐땅기에게서 성형수술을 받았던 마이클 잭슨은 파벨라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제목의 이 비디오에서 잭슨은 빈민가 아이들 수백 명에게 둘러싸인 채 좁고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춤추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차별이 없는 세상, 사랑과 평화만 가득한 세상을 갈구하는 내용이다.

혹시 삐땅기는 잭슨을 무료로 시술해주고 파벨라에서 이 비디오를 찍도록 한 건 아닐까? 아니면 잭슨이 삐땅기에게 감명받아 출연료 없이 이 비디오를 찍은 게 아닐까? 여태 아무도 제기하지 않은 의문을 가져본다.

정말 브라질에 또 가고 싶다. 뭔가 눈을 새로 뜨게 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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