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의 역설 上]① 경제이론 안통하는 경제현실… ‘유동성 함정’

입력 2016-08-17 10:36 수정 2016-08-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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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45개월째 0~1%대 머물러… 박스피 갇힌 코스피·환율 효과도 미미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1.25%까지 내려와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 취임 후 경기부양을 이유로 25bp(1bp=0.01%포인트)씩 다섯 번의 금리인하가 단행된 결과다. 반면 경제 성적은 초라하다. 경제성장률과 물가 등 실물경제는 물론 환율·주식 등 금융 경로까지 인하 효과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금리인하가 역설로 다가오는 셈이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2회에 걸쳐 금리인하 이후 전개되고 있는 경제·금융 상황을 짚어보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경제가 좋을 때는 시중에 돈이 넘치기 마련이고 물가도 치솟는다. 반대로 좋지 못할 때는 시중에 돈이 마르며 물가 역시 떨어진다. 이럴 때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시중 자금을 조절하면서 경기 상황에 대응한다. 이는 금리 및 환율 경로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하는 게 보통이다.

경제원론 수준의 상식이라면 사상 최저 수준에 와 있는 기준금리는 물가를 끌어올렸어야 하고 투자심리를 자극해 주식시장은 호황이어야 한다. 내외 금리 차 축소에 따라 외국인 자금 유입이 자제되거나 유출되면서 원화는 약세(원·달러 환율 상승)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의 수출이 늘고 더불어 기업활동도 활발해질 수 있다.

◇금리인하에도 물가 하락·주가 횡보 = 현실은 정반대다. 우선 소비자물가는 2012년 11월 전년 동월비 1.6%를 기록한 이래 45개월 연속 1%대 아래에 머물고 있다.

급기야 7월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은 물가안정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데 따른 설명회를 열었다. 이 총재는 당시 “국제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데 주된 원인이 있었다”며 물가하락을 공급 측 요인으로 돌렸다.

코스피도 박스피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국가신용등급 상향과 이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으로 그간의 박스권 상단인 2050포인트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불과 이틀 천하에 그쳤다.

오히려 위험자산인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인 채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달 초까지 채권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6조 원에 육박한다.

◇환율전쟁도 무용지물 = 환율도 금리인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개적으로는 환율전쟁에 소극적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올 4월 말 퇴임한 하성근 전 금통위원의 경우 “원화는 주요 거래 상대국 통화보다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단기간에 우려스러울 정도의 원화 강세를 보였다”며 마지막까지 인하를 주장했다. 앞서 2013년 1월 하 전 위원이 처음으로 소수의견을 내놨고, 그해 4월 실제 금리인하가 단행되기까지도 이 같은 원화 강세가 빌미가 됐다. 한은이 환율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 원화 약세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2014년 후반기부터 올 초까지의 원화 약세는 한은의 금리인하 때문이라기보다 미 연준(Fed)의 금리인상 기조에 따른 글로벌 달러 강세에 기인한다. 최근엔 Fed의 금리인상 지연 가능성과 S&P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으로 원화가 오히려 강세다. 16일 기준 원·달러는 1092.2원을 기록하며 1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유동성 함정 빠졌다 = 실물경제도 부진하다. 3%를 밑도는 성장률 탓에 생산과 고용 면에서 유휴생산력이 여전하다. 시설이나 인력이 그만큼 잠자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6월 기준 제조업 평균 가동률과 재고율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각각 72.1%와 122.2%를 기록 중이다. 가동률은 하향세를, 재고율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투자나 소비 쪽으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진 셈”이라며 “선진국 경기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주력산업인 IT와 자동차가 부진한 가운데 산업공백이 발생했다”고 봤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경제가 독과점이 되면 투자나 고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돈이 돌지 않는다”며 “국제화도 통화정책 효과를 기약할 수 없게 된 요인”이라고 평했다. 그는 또 “현재 채권시장도 기준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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