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의 회계부정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거액의 포상금을 거절했다고 1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SEC가 회계부정에 연루된 은행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데 대한 항의하려는 의도다.
도이체방크의 리스크 관리 직원이었던 에릭 벤-아르치는 자신에게 할당된 포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SEC 측에 알렸다. 벤-아르치는 도이체방크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절정기에 대규모 파생상품 포지션을 적절히 평가하지 않아 회계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에 미국 SEC는 지난해 도이체방크에 5500만 달러(약 615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도이체방크의 회계부정을 밝혀내는 데 도움을 준 내부고발자는 여러 명이었지만 SEC는 벤-아르치와 도이체방크의 전직 트레이더인 매트 심슨 등 두 사람에게 총 1650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이는 도이체방크에 부과한 벌금액의 30%에 해당하는 것이며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금으로는 역대 3번째 규모다. 그러나 벤-아르치는 자신에게 할당된 포상금 825만 달러(약 92억원) 수령을 거부했다.
벤-아르치는 FT에 기고한 글에서 도이체방크의 벌금은 주주들이 아닌 고위 임원들이 내야 한다며 SEC가 도이체방크 고위 임원들을 단죄하지 않은 것은 두 기관 사이의 회전문 인사 관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FT는 SEC와 도이체방크 사이에 회전문 인사 관행에 대한 벤-아르치의 주장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SEC의 사법부장과 수석 고문을 역임했던 로버트 쿠자미와 로버스 라이스 등은 도이체방크 출신이었고 1998년부터 2001년 SEC 사법부장 직을 맡았던 딕 워커가 도이체방크로 자리를 옮긴 것도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 사례라고 FT는 덧붙였다.
SEC는 2011년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제도를 도입했다. 내부고발자가 포상금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벤-아르치가 포상금 825만 달러 전액을 거부할 수는 없는 처지라고 FT는 전했다. 전처와 변호사 등이 포상금 일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