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제약협회로부터 ‘공동생동 규제 부활’ 건의를 접수받고 제약협회를 제외한 제약 관련 단체에 의견 수렴을 요구한 이유는 ‘모든 제약사들의 의견이 같을 수 없다’는 의구심에서다.
‘공동생동 제한’ 규제는 제네릭 진입 장벽을 낮춰달라는 제약업계의 요구로 철폐됐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의 요구로 완화된 규제를 다시 제약업계가 신설해달라고 건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공동생동 규제 철폐는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똑같은 의약품에 대해 임상시험을 따로 진행하토록 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라는 과학적 판단에 의해 결정됐다.
◇‘공동생동 제한’ 대체 뭐길래
‘공동(위탁) 생동 제한’ 규제는 국내 제네릭 의약품의 불신에서 탄생한 제도다. 지난 2006년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의 동등성을 비교하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 데이터가 무더기로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총 307개 품목의 허가가 취소됐다. 이른바 ‘생동조작파문’이다.
식약처(당시 식약청)는 제네릭 난립도 생동조작의 원인 중 하나라고 단정짓고 생동성시험을 진행할 때 참여 업체 수를 2개로 제한하는 공동생동 제한 규제를 2007년 5월부터 시행했다. 이후 같은 의약품인데도 생동성시험을 수 차례 진행해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A업체가 9개 업체로부터 위탁을 의뢰받고 총 10개의 제네릭을 허가받을 때 5번의 생동성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의약품인데도 똑같은 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제네릭 의약품만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B업체가 다른 업체에 포장만 바꿔 새롭게 허가를 받는 ‘쌍둥이 제품’을 내놓을 때에는 같은 오리지널 의약품 2개를 두고 생동성시험을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제네릭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효과는 있었지만 ‘불합리한 규제’라는 지적이 쏟아지졌고 규제개혁위원회의 개선 권고에 따라 식약처는 2011년 11월 이 규제를 전면 철폐했다.
식약처는 제약사들에 보낸 공문을 통해 “관련 단체 및 제약업계의 의견 수렴과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운영 협의체 논의 등을 거쳐 최종 규제개혁위원회의 개선권고에 따라 (공동생동) 규제를 폐지했다”고 명시했다. 제약업계의 요구로 규제를 완화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제약업계의 입장을 재차 문의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제약협회, 업계가 요구한 규제 완화 5년만에 입장 번복 왜?
제약협회가 도리어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나선 배경은 ‘허가 규제 완화→제네릭 난립→불법 리베이트 횡행’이라는 인식에서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제네릭의 과당경쟁이다. 허가 제도를 들여다보면 공동생동을 통해 허가가 이뤄질 수 있는 허가제도로 인해 수많은 제네릭을 양산해내는 환경이다”며 관련 규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실제로 식약처의 공동생동 규제 철폐 이후 제네릭 허가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제네릭 허가 승인을 목적으로 승인받은 생동성시험 건수는 2010년 388건에서 2011년 292건, 2012년 201건, 2013년 163건, 2014년 156건, 2015년 201건으로 점차적으로 감소세다. 그러나 생동성을 인정받은 제네릭 개수는 2010년 424건에서 지난해 1215건으로 크게 늘었다. 직접 생동성시험을 진행하고 허가받은 제네릭보다 다른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허가받은 제네릭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네릭을 허가받을 수 있어 최소 비용으로 가급적 많은 제품을 발매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제네릭 1개 품목을 허가받고 20개 업체 이상에 공급하는 ‘전문 수탁 업체’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들어 공장을 신축할 때 수탁 사업을 염두에 두고 대규모로 짓는 업체도 눈에 띈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난립만으로 리베이트 환경이 조성된다는 시각은 무리가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릭을 쉽게 허가받고,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만으로 리베이트 환경이 조성된다는 시각은 국내제약사들의 가치를 스스로 깎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제네릭 개수가 적었을 때는 리베이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영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 행위는 별도로 규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제약협회는 왜 몰래 건의했나..규제 재신설 가능성은?
제약협회가 제약사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에 ‘규제 부활’을 건의한 배경은 제약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공동생동 제한은 합의된 의견이 나올 수 없는 사안이다”고 일부 업체들의 반발 가능성을 인정했다.
기존에 제네릭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대형 제약사들이 대체적으로 공동생동 규제를 찬성하는 분위기다. 후발주자들이 속속 진입할 수록 시장 점유율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한 전직 상위제약사 영업본부장은 “아무래도 후발주자들이 저비용으로 제네릭 시장에 진입하면 과당경쟁으로 리베이트 유혹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수탁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거나 위탁을 통해 제네릭 시장을 두드리는 회사들은 공동생동 제한 부활 움직임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특히 보건당국은 그동안 제약사들의 의약품 품질관리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전문 위수탁 업체의 육성을 장려해왔다. 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면 품질 관리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취지다.
한 중견제약사 개발부 소속 담당자는 “공동생동 규제 철폐는 과학적 판단에 따라 불합리한 규제를 합리화한 것인데, 일부 업체의 영업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재신설을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제약협회가 누구를 대변하는 단체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상위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후발주자들의 제네릭 시장 저지를 위해 은밀하게 규제 부활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현재로서는 공동생동 규제 재신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식약처 내부에서도 한번 철폐한 규제를 다시 신설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약업체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만장일치로 규제 재신설 의견이 접수되면 검토 여부를 논의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이 접수될 경우 논의 자체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제약협회는 조만간 이사회에서 공동생동 규제 재신설에 대해 공론화를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