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집단 재계 12위 CJ그룹이 이재현 회장의 사면복귀를 계기로 변화의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우선 이 회장의 공백으로 느슨해졌던 그룹 내부를 수습하는 동시에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2020년 매출 100조 원, 해외 비중 70%를 목표로 하는 ‘그레이트 CJ’를 추진하고 있는 CJ로서는 지난 3년간 총수의 공백이 뼈아픈 부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그룹 승계 작업도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슬하에 아들 선호(27) 씨와 딸 경후(32) 씨 등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현재 CJ제일제당에서 대리로 근무하며 후계수업을 받고 있는 선호 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지만, 장기적으로 ‘포스트(post) 이재현’ 체제를 위해선 지분 이전이 필수적이다.
결국 CJ그룹은 이 회장의 복귀로 경영 정상화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이전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에서 계열분리… 이재현 회장 진두지휘 아래 사업 다각화 이뤄 = CJ그룹은 1993년 제일제당으로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이재현 회장이 선두에서 그룹을 총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아들로, 창업주의 손자다.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1995년 CJ엔터테인먼트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해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사업군을 이끌었다. ‘이미경 라인을 타면 자다가도 CF가 떨어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문화 콘텐츠 사업에 막대한 맨파워를 과시했지만, 지병으로 앓아온 유전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서 장기 요양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 손을 놓은 상태다.
CJ그룹은 지난 2007년 지주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은 현재 지주사인 ㈜CJ의 지분 39.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지주회사 ㈜CJ는 CJ제일제당(33.4%), CJ오쇼핑(40.0%), CJ올리브네트웍스(76.1%), CJ CGV(39.0%), CJ 프레시웨이(47.1%), CJ E&M(39.1%) 등의 지분을 보유하며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너이자 투자 결정권자로서 이 회장은 식품에서 출발해 유통ㆍ바이오ㆍ문화ㆍ외식ㆍ물류ㆍ극장 등의 사업다각화로 성장을 이뤘다. CJ그룹은 식품(제일제당, 씨푸드, 프레시웨이, 푸드빌), 유통(오쇼핑, 올리브네트웍스, 대한통운), 엔터테인먼트(CGV, E&M), 인프라(건설)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1994년 제일제당 등기이사로 선임된 후 7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던 이 회장은 2013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후 그룹 내 등기 이사직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올 초 지주회사인 (주)CJ와 그룹의 모태인 CJ제일제당의 등기이사직을 마지막으로 20여 년간 유지해온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지배구조는 ‘완성형’… 경영승계는 ‘미완성’ = CJ그룹은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재현 회장→㈜CJ→핵심계열사’로 이어지는 완성형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2013년 구속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CMT(샤르콧 마리 투스)라는 신경근육계 유전병에 따른 건강 악화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포스트 이재현’ 시대를 위한 승계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CJ는 이 회장 구속 이후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 이채욱 부회장, 이미경 부회장 등이 참여하는 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그룹의 주요 전략을 담당했지만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문제는 CJ의 적통 후계자로 꼽히는 선호 씨가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린 데다, 핵심 계열사에 대한 보유 지분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계 승계는 그룹을 이끌 후계자로서의 존재감과 지주사 ㈜CJ의 지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확보하느냐가 핵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딸 경후 씨의 경우 ㈜CJ 지분 0.13%를 비롯해 CJ제일제당(0.15%), CJ E&M(0.27%) 등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역시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이다.
◇사면복귀 후 그룹 현안 = 이 회장의 특별사면으로 CJ그룹은 우선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이 회장이 재계 인사 중 유일하게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풀려난 만큼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장 경영일선에 나설 수는 없지만, 총수의 존재가 그룹 차원의 과감한 베팅을 가능하게 한다는 기대다. 이 회장의 부재 기간 중 APL로지스틱스, 동부팜한농, 중국 바이오 기업인 메이화성우 등 각종 인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CJ는 최근 동양매직과 한국맥도날드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또 일감 몰아주기 이슈도 피해갈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 회장의 동생 재환 씨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는 CJ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 측은 CJ CGV가 스크린 광고영업 대행 업무를 계열사인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부당하게 몰아줬다고 보고 있다. 재산커뮤니케이션즈는 CJ CGV에서 상영되는 광고의 대행 업무로 연간 100억 원 안팎의 순이익을 올렸으며, 특히 작년 1∼9월에는 CJ CGV와 스크린 광고 등 명목으로 560억 원을 거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무산 이후 위기에 빠진 케이블TV 업체 CJ헬로비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CJ그룹은 이 회장의 사면 직후인 17일 변동식 (주)CJ 총괄부사장을 3년여 만에 CJ헬로비전 대표로 복귀시키는 인사를 단행하면서 매각 실패 후 공중에 떠버린 CJ헬로비전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