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인사이트] 미국의 피해자 코스프레

입력 2016-08-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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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달구었던 리우올림픽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은 메달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종합 2위에 그쳤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나 중국을 간신히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2012년 런던올림픽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성취한 듯한 느낌이다.

정작 트럼프 후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기 위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경제다. 무역·투자·이민의 벽이 낮아지면서 중국, 멕시코 등에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오는 것이 공약의 핵심이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공약도 무역과 투자 부문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도대체 미국 경제가 어떤 상황인데 이런 공약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갈수록 깊어진다.

세계 10대 기업(8월 19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 가운데 1~9위까지가 모두 미국 기업이다. 중국의 차이나모바일이 10위에 턱걸이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상위에 있었던 중국의 페트로차이나(4위)와 공상은행(7위)은 저 뒤로 밀렸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99%는 미국산이다. 세계 온라인 검색의 91%와 소셜미디어의 61%를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세계 농산물과 군수 시장에서는 미국의 독주체제가 굳어졌고 미국의 식품의약국(FDA)과 특허시스템은 세계 표준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펀드매니저들은 세계 자금의 55%를 운용하고 있고 달러화는 기축통화다. 그러니 금융·IT·서비스 등 고급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고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에서도 다른 선진국을 압도하고 있다. “이미 위대한데 뭘 더 위대하게 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만하다.

한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위협적인 통상 압력을 가했던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 전 세계은행 총재까지도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FTA 체결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증가율은 체결 후 5년 동안 전체 수출 증가율의 3배이고 지난 5년간 제조업 무역흑자는 320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FTA 체결 덕분에 농축산물 수출은 2003년부터 2013년 사이에 130%나 증가했다.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 예일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미국 경제가 앞으로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세계 20대 명문대학 가운데 15개 대학이 미국에 있고 미국인의 중간 나이는 37.8세로 독일과 일본의 46.5세에 비해 훨씬 젊은 데다 인구 증가율까지 높아 성장동력이 월등하다는 주장이다. 클라우드·공유경제·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영역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것도 핵심 성장동력이다.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완전고용 상태에 있으면서도 일자리를 빼앗겼다면서 심각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수입규제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은 피해자 코스프레다. 자동화로 줄어든 일자리마저도 경쟁국으로 핑계를 돌리고 있다.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는 미국 재계가 마냥 입을 닫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올곧은 미국 인사들이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한 것은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라이언 록티 선수가 아니라 넘어진 경쟁자를 부축해준 ‘노메달’의 애비 디아고스티노 선수다. 미국이 금융·서비스·첨단산업 등 많은 분야를 석권할 때 중국이 경공업, 일본이 자동차·소재, 한국이 가전·철강 등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균형 잡힌 국제교역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내달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G20 정상회담은 미국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바로잡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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