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졸릴 때는 욕이 특효여

입력 2016-08-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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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1주일 전에 차를 몰고 지방에 다녀온 일이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볼 일을 보고 점심을 먹은 뒤 귀가를 서둘렀다. 갈 때나 올 때나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곤지암 톨게이트를 나와 한 10여 분 달렸을 무렵,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두 차선 모두 차들이 시속 20km 정도로 기고 있었다.

출발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소변은 됐는데, 전날 잠을 거의 자지 못해(박인비 리우올림픽 골프 시청) 졸음이 마구 쏟아지는 게 문제였다. 자꾸 눈이 감겼다. 앞차와의 간격이 스르르 좁아져 깜짝 놀라며 브레이크를 밟곤 했다.

전방 1km 지점에 졸음쉼터가 있다고 크게 쓴 표지판이 보였다.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10분이라도 좀 자고 가야지. 그러나 그놈의 1km를 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한 차선이 막혀 있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고속도로를 개선한다는 안내문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뭘 하는 건지, 일하는 사람들과 장비는 볼 수 없었다.

이걸 어떡하지? 졸음쉼터까지 가기 전에 내가 꼭 사고를 낼 것 같았다. 그때부터 졸음을 쫓기 위한 전무후무하고 필사적이며 전방위적이고 결사적인 혼신의 노력이 시작됐다.

우선 스스로 뺨을 때렸다. 야, 인마. 정신 차려. 졸지 마 짜식아. 주로 오른손으로 오른뺨을 때렸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던 그 박수(따다다 닥닥)에 맞춰 때리기도 하고, 고래고래 “개새끼야, 쇠새끼야”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창문도 괜히 열었다 닫았다 했는데, 내가 소리 지르는 걸 옆 차선에서 본 사람은 ‘날이 더우니 저놈이 미쳤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욕을 하다가 완장 차고 으스대는 저수지 관리인 임종술 이야기가 재미있던 윤흥길의 소설 ‘완장’을 생각했다. “요 싹동머리 없는 새끼가 콩밥 못 먹어서 환장을 혔나! 야 임마, 니 눈에는 요게 안 뵈냐? 요 완장이 너 같은 놈들 눈요구나 허라고 백죄 똥폼으로 차고 댕기는 줄 아냔 말여?” “두엄데미 앞에서 유세차 허고 축문 읽는 게 대관절 뉘 집 자손이디야?”

좌우간 욕이란 욕은 다 했다. 그날 나한테 욕먹지 않은 사람은 내가 전혀 모르거나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잠깐 잊어버린 사람들뿐이다. 오영수(1914~1979)의 단편 ‘명암’도 생각했다. 1950년대 말 군대 영창에 신입이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야, 이 하늘로 날아가는 옘병 땜병 가슴앓이 속병, 두통 치통 생리통 견통 요통 근육통 신경통 관절통 유방통을 억지로 붙잡아다가 은행에 저당 잡혀 놓고 고조 증조 할아부지 아부지 아들 손자 증손자 대대로 이자만 뜯어먹고 사는 놈들아!” 이게 그 욕이다.

원문은 그렇지 않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내 말 듣거라. 날아가는 옘병을 억지로 잡아다가 은행에 저당을 해 놓고 대대로 이자만 뜯…” 신나게 욕을 하다가 교도관의 발소리가 들리자 얼른 입을 닫은 건데, 내가 살을 붙이고 병을 늘려 욕을 더 길게 만들었다.

근데 다 소용없었다. 내가 결정적으로 졸음에서 벗어난 것은 ‘졸음쉼터 잠정 폐쇄’라는 안내문을 보고 나서다. 그때 진짜로, 제대로, 나도 모르게 욕이 잘 튀어나왔다. @#$%^&*8! 그게 졸음에 특효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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