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패션 강국’ 프랑스, 비키니만 수영복이냐

입력 2016-09-0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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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팀장

살인적인 폭염이 맹위를 떨쳤던 올여름, 프랑스 해변의 무슬림 여성들은 폭염과의 싸움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프랑스 일부 지방정부가 ‘세속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슬람 여성들의 전신 수영복인 ‘부르키니(burkini)’ 착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여성의 전통 의상인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인 부르키니는 여성의 노출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피부를 노출하지 않고 해수욕을 즐기려는 이슬람 여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파리와 니스 테러, 한 시골성당 신부 살해를 계기로, 프랑스 30개 지방정부가 해변에 오는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를 유발해 공공질서를 훼손한다며 이슬람 여성의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 심지어 니스에서는 무장경찰이 한 이슬람 여성에게 부르키니를 강제로 벗게 하는 장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퍼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중세 윤리 규제령의 21세기 버전’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나왔다.

내년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치권은 이때다 싶어 부르키니를 공론화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르키니에 대해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슬람의 도발을 부추기는 복장”이라며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모든 대학과 기업에서 종교 상징물을 입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도 “부르키니는 여성 노예화의 상징으로 프랑스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며 거들고 나섰다.

특정 종교나 신앙 형식을 절대시해 남을 배제하지 않고 신교의 자유를 인정해온 ‘관용(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가. ‘패션 강국’ 프랑스에 대한 실망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체 비키니가 언제부터 궁극의 수영복이 됐단 말인가.

작년 5월 인터넷에서는 참으로 ‘핫한’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남성지 ‘플레이 보이(PLAYBOY)’ 모델로 활동하는 섹시의 아이콘 아만다 서니가 125년간의 수영복 변천사를 몸소 선보이면서 전 세계의 남심을 흔들었다. 영상 속에서 펑퍼짐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웃음을 치는 서니는 영화 ‘빠삐용’ 속 죄수들을 연상시키는 줄무늬 드레스에서부터 편안한 일상복 스타일의 투피스, 어깨와 허벅지를 수줍게 드러낸 원피스 등 다양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선보인다. 과감한 비키니가 등장한 건 1960년대. 이내 가리는 면적보다 노출하는 면적이 점점 넓어지더니 1990년대에는 손바닥만한 천으로 주요 부위만 가린 민망한 비키니가 등장했다.

수영복의 역사는 실제로 그랬다.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로 시작돼 점점 속옷처럼 간소해졌다. 빅토리아 시대만 해도 해변에서 수영할 때면 드레스에다 스타킹까지 신어야 했고, 소재도 모직이 많아 불편하고 무거웠다.

비키니란 개념이 등장한 건 1946년,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이었다. 프랑스 디자이너인 루이 리어드가 상하가 분리된 파격적인 수영복을 발표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 미국은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2차 세계대전 후 최초의 핵 실험을 실시했는데, 그 파괴력에 비유해 위아래가 분리된 수영복의 이름을 비키니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에 비키니는 환영받지 못했다. 노출이 심한 탓에 이탈리아를 비롯해 가톨릭을 국교로 한 나라에서는 해변에서 비키니 입은 여성을 단속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원피스, 비키니, 래시가드 등 사용 목적과 디자인, 하의라인, 톱라인 등 용도에 따라 수영복도 다종다양한 시대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눈과 콧구멍만 빼고 전신을 가리는 ‘페이스키니(facekini)’가 유행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그런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복장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에게 옷을 벗도록 강요하는 시대가 온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지만 이는 자유·평등·박애 정신이 투철한 나라, 패션 강국 프랑스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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