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부챗살 타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교타자(巧打者)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스 2군 감독(1956.7.6~2011.9.7)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됐다. 현역 시절 ‘타격의 달인’, ‘안타 제조기’ 등으로 불렸던 그는 1983년 삼성 라이온스 입단 첫해 타율 3할6푼9리(1위), 18홈런(공동 3위), 117안타(공동 1위), 62타점(공동 3위), 22도루(4위), 장타율 6할1푼8리(1위), 출루율 4할7푼5리(1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1985~87년 3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그는 대구상고(현 대구상현고) 2학년 때 고교야구 3대 메이저대회인 대통령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함으로써 대구상고 전성시대를 열었고 고교시절 다섯 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한양대 2학년 때에는 실업팀도 출전한 백호기대회에서 타율 0.714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타격왕에 올랐고, 그해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됐다.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 참가, 한국야구의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장효조는 힘과 스피드, 정확성, 수비력, 근성을 두루 갖춘 독보적 타자였으며 “그가 안 치는 공은 볼”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선구안도 뛰어났다. 또한 ‘독종’으로 불릴 만큼 훈련에 매달렸다. 그는 생전에 “체구가 작아 언제 밀려날지, 선수생활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결국 나를 만든 건 8할이 훈련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2년 은퇴한 뒤 롯데와 삼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삼성 2군 타격 코치, 2군 감독을 지냈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였던 그도 간암에는 이기지 못했다. ‘영원한 3할 타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하는 팬들은 대구라이온스파크에 그의 동상을 세우자고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