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권호의 역학경영] CEO는 외롭고 고독하다

입력 2016-09-13 10:06 수정 2016-09-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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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의 CEO는 고독하다. 고독할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 자체가 민간기업의 속성이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때만이 성장은 그만두고라도 제자리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과 기업의 모든 것을 걸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적지 않다. 그 결단의 결과가 좋으면 잘나가는 기업인이 될 것이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의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자신은 잊히게 된다.

단순히 잊히기만 해도 다행이다.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깨끗하게 정산해주지 못하거나 각종 공과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관계 당국에 고발돼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을 오가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

CEO의 결단이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알아보자.

국내 건설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식어버린 국내 건설경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해외, 특히 중동에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제 살 깎아먹기식의 저가 수주가 일반화됐다.

2009∼2011년에 수주한 해외 대형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한 2013년부터 수주 당시에는 큰돈을 벌 것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일부 유명 대형 건설업체들은 소위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저가 수주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수주한 프로젝트가 많은 건설업체일수록 2013년부터 대규모 적자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고강도의 구조조정으로 많은 임직원을 내보내야만 했다. 또 주가가 폭락해 사회적 지탄을 거세게 받았으며, 일부 업체는 현재까지도 분식회계와 관련된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저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잘 떨쳐낸 업체들은 지금도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정상적 이윤이 확보되는 프로젝트만 수주한 기업들은 해외 저가 수주 경쟁이 만연했던 당시 경쟁업체들에 비해 매출이 떨어지고 주가도 약세를 보이는 불이익을 당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저가 수주에 나선 유명 건설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발표하며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때 재무건전성을 인정받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높은 신인도를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H개발이다. 경쟁 상대인 유명 대형 건설업체들이 2009~2011년 대규모 해외 건설공사 수주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주가가 대폭 상승한 데 비해, H개발은 매출액이 정체되고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주가도 약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유명 대형 건설업체 중 유일하게 해외 수주가 없어 부실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시장에서 인정받아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높은 주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 과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글로 쓰고 있지만, 해외 저가 수주로 지탄받은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많은 임직원이 직장을 잃고 떠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기업이 흥하건 망하건, 성장을 지속하든 멈추든 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출발점은 해당 기업의 CEO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다. 이 점에서 CEO는 항상 고독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기업의 CEO가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에는 정답이 없다. 세계적 경영학의 대가가 옆에 있다고 해도 CEO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줄 수는 없다. 오직 좋은 결과만이 CEO의 결정과 결단을 정당화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거액의 비용이 드는 경영컨설팅이 CEO의 고독하고 어려운 결정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외환보유액 고갈로 대한민국이 경제주권을 제약받았던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효과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한다는 명분하에 외국계 유명 컨설팅업체에 거액의 자문수수료를 내고 컨설팅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분이야 그럴 듯했지만 경영컨설팅 전문업체에 거액을 주고 제품개발 혹은 회사의 장기 경영전략과 관련된 컨설팅을 받았던 대기업 중에는 컨설팅 업체로부터 시장의 흐름과 상반되는 전략을 권유받고 이를 채택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본 경우도 발생했다.

휴대폰, 정보통신기기,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A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B전자는 유명 컨설팅업체의 권고를 따르다 수익성 원천으로 부상한 스마트폰 진입 시기를 놓쳐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 회사는 당시 경영을 총괄했던 전문경영인에게 책임을 물어 퇴진시켰다. 그리고 컨설팅 업체에 매년 300억 원씩의 자문료를 주며 경영 전반을 논의하는 ‘컨설팅 경영’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흐름과 기술 발전 추세에 역행하는 제품개발 및 투자전략을 채택하는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 B전자는 고용 사장 후임으로 그룹 오너가의 경영자가 취임한 이후 컨설팅사와의 절교(絶交)를 선언하고 독자적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정수기 전문업체로 출발했던 W그룹도 컨설팅 전문업체의 권고에 따라 M&A 등을 진행하다 인수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에 휘말려 고생했다. 이후 수익성 높은 알짜 계열사들을 대거 매각해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또한 S그룹은 IMF 금융위기 당시 컨설팅 전문업체의 권고만 듣고 가장 먼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핵심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경영상의 큰 차질을 빚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 같은 현상은 민간기업들의 경영 현장이 항상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으며, 매우 복잡한 변수들이 얽히고설켜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거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경영컨설팅 전문업체로부터 컨설팅을 받는다 한들 경영상의 리스크를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경영상의 중요사항은 CEO가 진정으로 신뢰하는 직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경험과 연구를 통해 모든 것을 책임지면서 고독하게 결단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CEO가 리스크 매니지먼트 수단으로 미래 상황을 예측하고 중요한 경영전략을 수립ㆍ결정하는 과정에 역학의 조언을 참고할 수 있다고 본다. 혹자는 본인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역술가’ 주제에 웃기는 소리를 한다면서 냉소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누가 옳고 그르냐는 순식간에 판명 난다.

치열한 경쟁을 매 순간 체험하는 CEO 입장에서는 세계 유명 경영대학원의 교수가 만든 이론이든, 일개 역술가에게서 나온 이론이든 자신과 기업에 최선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릴 이유가 없다.

만약 기업 운영의 모든 것을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하는 수리통계학적 이론이나 현란한 그래프 작성만으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떤 CEO도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CEO가 경영 현장에서 부딪치는 현안 중 대부분이 강의실에서 배운 경영학 이론과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기업경영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제대로 내렸는지 여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후에 판가름 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민간기업들의 끊임없는 부침(浮沈)의 근원이 된다. 세계적 대기업도 경영진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몇 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회사로 전락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무명(無名)의 중소기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의사 결정 당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살펴보면 매우 중대한 변수를 놓친 ‘바보 같은 결정’으로 판명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반대로 대다수 전문가의 반대에도 CEO가 뚝심으로 밀어붙인 ‘불도저 결정’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매우 현명했다는 찬사를 듣는 경우도 많다.

바로 이 점에서 기존 경영학 이론만으로 CEO들이 경영현장에서 겪는 각종 불확실성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리스크 매니지먼트 수단으로 역학을 활용하는, 소위 ‘역학경영’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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