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 수년간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쳐 이른바 오바마의 출생지를 검증해야 한다는 ‘버서(birther)’운동을 이끌어왔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D.C. 옛 우체국 자리에 새롭게 문을 연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에서 열린 참전용사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태어났다”며 “이제 우리 모두 미국을 다시 강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것에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오바마 출생지 논란과 관련해 비난의 화살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돌리기도 했다. 그는 “클린턴이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서’ 논쟁을 시작했으며 그 논쟁을 내가 끝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이나 2008년 그의 대선 캠프가 버서 논쟁을 시작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WSJ는 덧붙였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하와이가 아니라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공화당 정치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초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출생 기록이 없다”며 “있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무슬림이라고 오바마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 해 4월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또 그다음 달 열린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트럼프를 비꼬았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출생증명서가 나왔기 때문에 트럼프는 이제 가짜 달착륙, 로스웰 외계인 등 더욱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농담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날 트럼프 캠프는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면서 트럼프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흑인여성 포럼에서 “트럼프가 음모론을 갖고 논 것은 그가 백악관에 부적합한 인물임을 보여준다”며 “트럼프는 지난 5년간 버서 운동으로 정당하게 뽑힌 우리의 첫 흑인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그의 이런 캠페인은 추악한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이며 역사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의 발언과 관련해 “나는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확신하며 대부분 사람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며 “대선이 내 출생지 논란보다 더 심각한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한다”며 넌지시 트럼프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