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9월 27일 장세동-일해재단 기금 모금 주도한 전두환의 충복

입력 2016-09-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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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강제 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필요도 없었다. 경제인들 스스로가 상호 협의 조정해 결정했다.”

‘5공 비리의 축소판’인 일해재단의 설립과 기금 모금을 주도한 장세동(1936.9.27~ )은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강제성을 폭로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 … 그 다음부터는 내기가 힘들어졌으나 안 낼 수도 없었다.”(정주영 전 명예회장 청문회 발언)

일해재단은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순직자들의 유족에 대한 지원과 장학사업을 위해 만들었다지만 ‘일해재단 영빈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 거처로 지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일해재단은 세종연구소로 개칭했다.

장세동은 북극성회(하나회 전신)에 참여했으며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 감찰관으로 두 번째 파병됐다가 전두환을 만나 충복이 됐다. 12·12사태 및 5·17 비상계엄에 개입한 이후 대통령 경호실장,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며 제5 공화국의 실세로 떠올랐고 노태우, 노신영과 함께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안기부장에서 사퇴했다. 이후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에 비유해 “죽은 종철이 산 세동을 쫓아냈다”는 말이 돌았다. 5공 청문회로 자신을 처벌하려는 여론이 높아지자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향해 “가만히 있어라, 내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5공 비리로 구속됐지만,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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