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금] 프랑스 정부와 알스톰, TGV공장 폐쇄 놓고 힘겨루기

입력 2016-09-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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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선거철이 되면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내년 상반기에 대선과 총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좌파 정부와 세계적인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알스톰(Alstom)이 동부 도시 벨포르(Belfort)에 있는 공장 폐쇄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알스톰은 26일(현지시간) 노사 대표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벨포르 공장을 폐쇄하려던 경영진의 결정을 일단 보류하고 내주 초까지 정부와 재협상하기로 했다. 한편, 어제 벨포르 공장 근로자 300명은 그들이 제작한 TGV를 대절해 파리로 올라와 파리 근교 본사 앞에서 공장 폐쇄 반대 시위를 하며 경영진과 정부에 다시 한번 압력을 가했다.

이에 앞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13일 벨포르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알스톰 경영진의 결정에 개입, 이 공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프랑스 정부는 알스톰 주식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이 일련의 사태는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알스톰사가 이달 초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이 야기한 것이다. 이 발표에 따르면 알스톰사는 스트라스부르 북쪽으로 50km 떨어져 있는 레이치쇼펜(Reichshoffen)으로 철도 차량 생산을 집중화하고, 벨포르 공장은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2월 취임한 앙리 푸파르-라파르즈(Henri Poupart-Lafarge) 알스톰 사장은 벨포르 공장은 최대한 버텨 왔으나 이제는 수주량의 감소로 계속 가동이 불가능해졌다고 공장 폐쇄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 공장 근로자 400여 명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겠다면서 이미 수개월 전에 이런 내용을 정부에 통보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발표는 마을 주민과 근로자는 물론 지역 정치인들에게 ‘정부의 배신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작년 봄 이곳을 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당시 경제장관이 알스톰 근로자는 ‘한 명도 해고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 정서는 낮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선 재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에게는 커다란 악재다. 알스톰은 ‘프랑스 산업의 보배’라고 불려온 핵심 기업이며, 벨포르는 1880년 알스톰의 첫 증기 기관차가 생산된 프랑스 산업의 상징적인 도시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인의 80%는 벨포르 공장의 폐쇄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기를 바라고 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벨포르 공장의 폐쇄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로 정부는 새로운 발주를 통해 이 공장이 계속 가동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며 이미 몇 개의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는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경제학자 엘리 코엔은 경제지 ‘레제코(Les Echos)’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가 알스톰의 새로운 수주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업체는 국영 철도업체인 SNCF인데 SNCF는 이미 심각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발주를 강요당할 경우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랑스 고속철은 저가항공, 고속버스 등과의 경쟁으로 이미 상당한 이익 감소를 겪고 있다.

정부의 벨포르 공장 회생 노력이 또 하나의 플로랑주(Florange)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이 2012년 프랑스 동부 도시 플로랑주에 위치한 용광로 2기 폐쇄 계획을 밝히자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올랑드는 설비 폐쇄를 막아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르셀로미탈은 결국 올랑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2013년 7월 용광로 2기를 폐쇄했다. 이때 해고된 근로자들은 정부의 ‘배신’을 비난했으며 이 사태는 사회당 정권의 무능의 상징이 되었다.

1976년 프랑스 최대 조선소인 아틀랑티크 조선소(Chantiers de l’Atlantique)와 합병한 알스톰은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좌파 정부에 의해 국유화되었다가 1987년 다시 민영화됐다. 알스톰은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어려운 고비마다 정부의 개입과 지원을 받아왔다. 2004년에는 당시 우파 정부의 개입으로 도산 위기를 면한 바 있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는 이 기업의 지분 21%를 확보하고 유럽연합(EU)의 승인을 받아 25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그리고는 송전·배전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당시 ‘건설적인 국가 개입’의 사례로 알스톰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 조치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알스톰은 다시 대규모 적자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가 작년에 전력 에너지 사업 부문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 106억 달러에 매각했다. 에너지 사업 부문 매각 이후 알스톰은 철도 차량 부문에 집중하면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푸파르-라파르즈는 르몽드 기고에서 주장했다. 알스톰은 2015~2016회계연도에 매출액이 69억 유로로 7% 신장세를 보였다. 또 6월 30일 기준 수주액은 297억 유로에 달했는데, 이는 4년분에 맞먹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매출 증가는 주로 해외 부문의 실적에 의한 것이고 12개의 프랑스 국내 공장은 수주량이 감소해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국영철도 SNCF와 도이체방크가 합작해 만든 아키엠(Akiem)이 발주한 44개 기관차 제작과 관련 토목 공사(1억4000만 유로 상당)를 알사스 지방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독일의 보슬로(Vossloh)에 빼앗겼다.

이 지역 출신 상원의원인 세드릭 페랭은 벨포르 사태는 선견지명의 부족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도와 미국이 알스톰으로부터 주문하는 TGV는 현지에서 생산되며, SNCF는 독일에서 열차를 주문한다며 (프랑스 기업은) ‘장기적인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SNCF는 최근 독일의 보슬로와 지멘스 그리고 캐나다의 봄바디어(Bombardier)에 열차를 주문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세계 철도 차량 분야에서 봄바디어와 지멘스 외에도 중국의 CRRC가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CSR과 CNR가 합병하여 덩치 키우기를 위한 기업으로 알스톰, 봄바디어, 지멘스를 합친 것보다도 거대하다고 보도했다. 그 외에도 스페인의 CAF, 그리고 최근 19억 유로를 들여 두 개의 이탈리아 기업을 인수한 일본의 히타치, 폴란드의 페사(Pesa) 그리고 스위스의 스태들러(Stadler) 등이 있어 알스톰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알스톰과 봄바디어의 합병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벨포르 구제안이 실패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벨포르 시의 구호는 ‘알스톰은 벨포르, 벨포르는 알스톰’이다. 벨포르는 1880년 알스톰의 첫 증기 기관차가 생산된 프랑스 산업의 상징적인 도시일 뿐만 아니라 1978년에는 전 유럽의 부러움을 샀던 TGV가 최초로 생산된 곳으로, 지금까지 TGV 기관차는 이곳에서 생산해 왔다. 알스톰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기업이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TGV 수출을 위해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1권을 들고 1993년 방한했다. 그는 TGV 낙찰에는 성공했지만 그가 약속한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반대로 오랜 난항을 겪은 뒤 2011년에야 5년 단위 대여 갱신의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되었다.

자국의 주요 대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좌우에 관계없이 일자리와 국가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기업의 경영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이번 알스톰 사태도 그런 경우다.

그러나 파리-도핀 대학의 장-마리 슈발리에 교수는 ‘레제코’에 게재한 ‘과도한 국가 개입이 만든 환자’란 제하의 칼럼에서 정부의 이런 개입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알스톰 사태는 ‘공격적인 경쟁보다는 보호’를 선택한 국가 정책이 만든 결과라고 지적하고, 정부 개입을 줄이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세계적인 경쟁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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