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이 허가가 사라진 간판 제품의 오리지널 의약품 지위 유지를 위해 보건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경쟁사에 판권을 뺏겨 허가를 취하했지만 영업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대웅제약, 행정심판 제기.."글리아티린 취하했어도 대조약 지위 유지"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최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공고에 대해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이 뇌기능개선제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하자 식약처가 ‘글리아티린’ 대신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했는데, 이 행정이 불합리하다는 내용이다.
대조약은 복제약(제네릭) 허가를 위한 동등성시험을 진행할 때 비교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같은 성분 제품 중 대조약으로 지정된 제품과 비교해서 동등성을 입증해야만 제네릭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웅제약의 오랜 간판 제품 ‘글리아티린’의 판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가면서 촉발된 갈등이다.
하지만 지난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이 더 이상 ‘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지난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다. 다만 기존에 유통한 재고 물량은 10월말까지 보험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과 동일 성분의 ‘글리아타민’을 생산, 계열사 대웅바이오에 공급하고 있다.
이후 식약처는 지난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앞으로는 제네릭 허가를 받으려면 종근당글리아티린과 동등성을 비교해야 한다는 의미다. 글리아티린의 허가가 사라진 데 따른 후속조치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한 이유는 오리지널 제조업체 이탈파마코의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사실상 원 개발사의 품목과 같다는 판단에서다.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보면 약사법에서 정한 신약,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 등을 대조약으로 지정한다. 신약이나 원개발사 품목의 허가가 취하되면 동일 성분 제품 중 전년도 청구수량이 가장 많은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가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로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글리아티린의 허가가 취하됐지만 10월까지는 유통물량의 보험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에 제네릭 개발시 글리아티린을 활용해 동등성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웅제약이 제기한 행정심판 내용에 대해 현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현장서 '대조약=오리지널 의약품'..'오리지널 지위 오래 누리려는 의도' 의혹
허가가 없어진 제품이 대조약인지 아닌지를 놓고 제약사가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시 동등성을 비교하는 대상을 지정한 것일뿐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이 대조약 지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오래 누리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약사법상 대조약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신약이나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주로 대조약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영업현장에서는 ‘대조약=오리지널 의약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식약처가 지난 5월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하면서 사실상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은 올해 상반기 처방실적 100억원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종근당은 글리아티린 원 개발국 이탈리아 출신 아멘타 카멜리노대학 교수를 초빙해 글리아티린을 활용한 장기 임상연구 결과를 의료진에 알리며 '종근당글리아티린=오리지널 의약품'이라는 이미지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릭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성을 인정받은 약물이지만 의료진들은 원 개발사가 만들어 오랫동안 판매한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 입장에서는 지난 16년간 간판 제품 역할을 했던 글리아티린의 판권을 경쟁사에 넘겨준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사실상 오리지널 의약품 지위도 뺏기자 행정심판을 제기하며 경쟁사 견제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 관계자는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