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김영란法’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경계하며

입력 2016-09-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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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은 자신만의 운명(?)을 타고난다는데, 마침내 28일부터 시행된 일명 ‘김영란法’(원래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탄생 이전 못지않게 탄생 이후에도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운명의 소유자는 아닌 듯하다.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법 조항에 힘입어,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신뢰사회로 가자는 법 취지에 딴죽 걸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법이 실행되는 순간부터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법 본래의 취지를 무색케 하거나 희화화할까 봐 벌써 기우가 앞섬을 숨길 수가 없다. 법 제정 당시의 합당한 취지 및 명백한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배태해온 전례를 다수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 이후 증식한 재산에 대해 부부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해주자는 취지의 부부재산분할청구권이 통과되자 곧이어 황혼이혼율 급증이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현실화되었던 사례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군 복무 의무를 마친 남성을 대상으로 국가적 차원의 보상을 제공해준다는 의도로 도입된 군 가산점제가 정부 내 여성 고위직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거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 제고를 목표로 했던 비정규직 법안이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왔음 등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생생한 실례라 할 것이다.

김영란법 역시 부정부패 근절이란 멋진 명분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안 주고 안 받기’의 일상화에 더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가 생활화되면서, 양심과 선의에 기반한 공동체적 가치의 소멸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하는 건 아닐는지.

서구에서도 개인주의가 제도적 수준에서 정착되기까지는 200여 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서구식 관료제의 특징으로 조직 내 공적 업무와 조직 밖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고, 조직의 물질적 자원을 소유할 수 없음이 강조되고 있는 배경에는, 근대의 시작과 더불어 비로소 공사(公私)를 명백히 구분하고 성문화된 합리적 규칙에 따라 투명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계기가 담겨 있는 것이리라. 결국 서구에서도 대가성을 전제로 하는 교환이나 ‘우리가 남이가’ 식의 규범이 단기적으론 목표 달성에 효율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비합리성의 폐해가 축적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해온 것이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압축적 변동 과정을 지나온 우리로선 김영란법이 자연스럽게 생활화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인의 인간관계나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징 속엔 서구식 개인주의와 확연히 구분되는 우리만의 맥락적 특성이 있음 또한 기억할 일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E. 홀(Hall)이 분류한 바에 의하면 ‘고맥락(high context) 문화’에 속하는 우리네로선, 선물과 접대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통로의 기능을 하고, 향후 안정적 관계의 지속을 동의하는 표식이 된다.

덕분인가, 우리에겐 서슬 퍼렇던 가정의례 준칙이 슬그머니 용두사미로 끝났던 아픈 경험이 있다. 법적 규제를 계기로 의식 및 가치관의 변화가 자연스레 수반되지 못한다면 김영란법의 운명 또한 낙관을 불허하리라. 어차피 선물(膳物)과 뇌물(賂物)의 차이는 상식적으로 구분이 가능할 터.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이란 매몰참도 방지하면서, 김영란법 본래의 취지도 충실히 살릴 수 있는 신(神)의 한 수를 찾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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